정부 "사직서 수리 허용" 결단에 전공의 "복귀 안 해"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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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일 만에 모든 행정처분 중단
업무 개시 명령 철회·수련도 약속
전공의 "정부 못 믿어, 사직할 것"
기피·응급의학과 의료 공백 심화
또다시 처벌 않는 전례에 비판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료개혁 관련 현안 브리핑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료개혁 관련 현안 브리핑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전국 수련병원장에게 내린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과 전공의에게 내린 진료 유지 명령, 업무 개시 명령을 전격 철회했다. 전공의의 병원 복귀를 돕기 위해, 이들이 원래 소속된 수련병원에 복귀할 경우 행정처분 절차도 중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정부를 믿을 수 없고, 이대로 병원을 사직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며 각을 세웠다.

■105일 만에 정부 결단

지난 2월 20일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난 이후 105일 만에 정부가 전공의에 내려진 모든 행정명령을 중단하기로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4일 오후 의료개혁 관련 현안 브리핑을 열고 “의료계 현장 목소리와 전문가 의견을 들어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이 아닌 개별 의향에 따라 복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과 전공의에게 부과한 진료 유지 명령, 업무 개시 명령을 오늘부로 철회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앞서 서울 상급종합병원장들과 간담회를 열었는데, 병원장들이 전공의 사직서를 수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조 장관은 “전공의가 복귀하면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하고 법적 부담 없이 수련에 전념할 수 있게 하겠다”며 “복귀하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수련기간 조정 등을 통해 필요한 시기에 전문의를 취득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가겠다. 이 경우에도 수련의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보완하겠다”고 전했다.

그동안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올해 전문의 배출에도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정부가 전공의에 내려진 모든 행정명령을 철회하면서 또다시 ‘당근책’을 제시한 셈이 됐다. 또 유례없이 비상 진료체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응급·중증환자 고통이 크고, 병원에 남은 의료진은 ‘번아웃’을 겪고 있는 점도 고려했다.

정부는 전문의 시험을 치기 위해 수련 기간 등 자격 요건은 갖춰야 하지만, 먼저 시험을 보고 추가로 이탈한 기간 동안의 수련 시간을 맞추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문의 면허를 따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전병왕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탈 기간이 3개월이 지난 레지던트도 복귀하면 1월에 같이 시험을 치고 합격하면 나머지 추가 수련을 통해 면허를 발급하는 방법이 있고 추가 시험을 통해 한 번 더 시험을 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며 “인턴들은 내년 2월까지 수련을 다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규정을 바꿔서라도 기간을 단축해 복귀하면 레지던트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고 전했다.

■“복귀 없다” 강경한 전공의 반응

전공의들은 정부의 전격 행정명령 철회에도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 박단 위원장은 전날 전공의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사직서가 수리돼도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위원장은 “애초에 다들 사직서 수리될 각오로 나오지 않았느냐”며 “사직서를 쓰던 그 마음이 저는 아직 생생하다.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으로 지금까지 유보되었을 뿐이다”고 썼다.

전공의 사직서가 수리되더라도 복귀하는 전공의는 많지 않을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는 수련병원으로 복귀하겠지만, 의사 면허가 있는 전공의들이 개원을 하거나 봉직의로 1·2차 병원에 취업할 가능성이 더 많다.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로 불리는 기피 과와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공백은 올해 내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이 필수의료과를 더욱 기피하는 경향이 가속화될 조짐도 보인다.

이번 정부 발표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의사 단체의 집단행동에 대해 또다시 처벌하지 않는 전례를 남겨서다. 그동안 정부는 3개월 의사 면허정지 등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행정처분 카드로 으름장을 놓았다. 조 장관은 “당연히 형평성 문제는 제기될 수 있다. 이번 결정은 정부가 의료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린 불가피한 조치”라면서 “현장에 남아서 환자 곁을 지킨 전공의에게 별도의 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설명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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