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상태 양호한 빈집, 전시실·숙박 등 활용 지혜 모아야 [부산 '빈집 SOS']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6. 민간에서 찾는 해법

면적·건축 연도 등 공개 매매 유도
경남 하동·남해군 홈페이지 게시
부산 중구청 빈집은행 내년 운영

지역 곳곳 새 단장 후 활용도 높여
예술 창작 공간·공동체 시설 변신
“원도심 이점 살려 활성화 묘안을”

빈집 정비를 위해 철거 후 매입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용 방안이 병행이 되어야 한다. 부산 동구 수정아파트의 빈집을 활용한 전시회. 부산일보 DB 빈집 정비를 위해 철거 후 매입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용 방안이 병행이 되어야 한다. 부산 동구 수정아파트의 빈집을 활용한 전시회. 부산일보 DB

인구 소멸로 ‘팽창’에서 ‘축소’로 도시 계획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빈집 역시 장기적으로 매입·철거해 팽창 도시로 형성된 밀집된 공간을 서서히 비워 나가야 한다. 하지만 관 주도의 빈집 정비로는 가파른 빈집 증가 속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거주와 생활에 이점이 있으며, 상태가 양호한 빈집은 민간 차원에서 거래를 활성화하고 활용도를 높인다면 빈집 증가 속도를 늦추고 정부와 지자체 빈집 대책의 효과도 높일 수 있다.

■‘빈집 은행’ 시도하는 지자체들

농촌 지역에서는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해 빈집 정보를 확인하고 매매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거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등에 따르면 경남 하동군과 남해군, 충북 청양군, 충남 홍성군 등은 빈집 소유주가 희망하거나 동의한 경우 빈집 면적과 건축 연도, 위치 등을 지자체 홈페이지에 게시해 거래를 유도하고 있다.

대도시인 부산에서도 빈집 은행이 곧 운영된다. 부산 중구청은 노후·불량도가 가장 심각한 3등급 빈집은 제외하고, 상태가 양호한 1~2등급 빈집에 대해 소유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빈집 은행을 내년부터 운영한다. 중구청은 구청 홈페이지에 빈집 은행 사이트를 구축하고, 지역 공인중개사들을 협력 중개사로 지정해 활동비를 지원하고 거래 성사 시 법정 수수료를 지급한다.

부산 중구 산복도로에 빈집을 숙박 시설로 개조한 ‘산복어울스테이’ 내부. 부산일보 DB 부산 중구 산복도로에 빈집을 숙박 시설로 개조한 ‘산복어울스테이’ 내부. 부산일보 DB

중구청은 신속한 철거가 필요한 3등급 빈집은 매입·철거해야 하지만, 입지가 양호한 1~2등급 빈집은 얼마든지 임대나 매매가 가능하다고 본다. 구청은 200만~400만 원 정도를 지원해 수리와 도배를 한 뒤 신혼부부와 대학생 등 주거 취약 계층에 우선 순위를 두고 주변 시세보다 20~30% 저렴하게 임대한다. 또 매입 수요가 있을 땐 매매로 이어지도록 중개한다. 중구청은 빈집이 급증하고 있지만, 철거 비용 증가와 예산 부족으로 철거 중심 빈집 대책은 한계가 있다고 봤다. 중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안전 등의 문제가 심각한 빈집은 3등급인데, 1~2등급 빈집은 3~4년만 그대로 두면 3등급으로 전락해 슬럼화를 심화시킨다”며 “3등급이 되지 않도록 1~2등급은 빈집 정보를 수요자들에게 공유하고 거래가 이뤄지도록 해 원거주민 재정착을 유도하고 빈집 확산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수준의 빈집 은행을 전국 단위의 빈집 은행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부동산원 빈집정비지원부 관계자는 “한국부동산원에서도 빈집정보시스템을 구축해 빈집 현황을 관리하고 있지만, 빈집 관리의 주체는 구청장과 군수 등 단체장이고, 빈집 거래를 위한 동의 절차도 지자체가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전국 단위의 빈집 정보 공개와 거래 활성화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빈집 거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나가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 부산에서 첫 운영되는 빈집 은행 시스템 구축을 논의하는 부산 중구청 건축과 회의 모습. 김준현 기자 내년 부산에서 첫 운영되는 빈집 은행 시스템 구축을 논의하는 부산 중구청 건축과 회의 모습. 김준현 기자

■숙박·창작·작업 공간이 된 빈집

부산 영도구 봉래2동 봉산마을은 2018년부터 빈집과 연계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진행돼 올해 마무리된다. 빈집 등을 정비한 곳엔 게스트하우스와 마을 쉼터, 창업 공간, 마을 공동체 시설 등이 들어섰다. 일부 빈집은 철거된 이후 이웃 주민의 마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동구 수정아파트 빈집 6곳은 예술 창작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동구청은 빈집을 무상으로 빌려주고, 공모로 선정된 예술인들은 빈집에 입주해 예술 활동을 한다. 중구 영주아파트 빈집 3세대는 문화예술인 레지던스로 쓰인다.

중구 산복도로에는 지난해 9월과 10월 ‘산복어울스테이’와 ‘하이앤드하우스’가 각각 들어섰다. 중구청은 산복도로에 있던 빈집을 개조해 숙박 시설과 카페로 변신시켰다. 중구청은 빈집을 활용한 숙박 시설을 추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동구에서는 빈집이 자원순환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지역에서 배출된 투명 페트병, 플라스틱 장난감 등으로 장갑, 안전 조끼, 가방, 조명 등의 제품을 제작해 판매까지 한다. 센터는 고령층이 많은 동구에 연간 250여 명의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고 자원 재활용에도 기여해 성공적인 빈집 활용 사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동의대 신병윤 건축학과 교수는 “외곽에 신도시를 만들고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도심의 인프라 투자는 뒤처지고 고령화와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며 도심의 빈집 문제는 심화되고 있다”며 “지리적 이점을 가진 도심의 빈집은 도시 기능이 집중된 ‘콤팩트 도시’와 연계해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며, 이를 위해 민간에서 빈집이 활발히 거래되고 정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빈집 거래 온라인 플랫폼인 ‘봄집’을 운영하는 싸이트플래닝 한영숙 대표는 “지자체에서 풀기 어려운 빈집 상속 분쟁이나 정비 예산 부족을 빈집 문제에 특화된 기업과 함께 해결해 나가거나, 빈집 정비 후 비워진 공간을 기업, 마을 협의체 등이 지속 가능하도록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방법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