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학교 밀집 대규모 재개발, 심의 두 번 만에 ‘뚝딱’ [거수기 된 교육환경평가]
상: 전문 기관 권고 무용지물
서금사재정비 A구역 3개 부지
총 2352세대 아파트 건립 예정
소음·경사도 등 보완 지적에도
교육환경위, 대책 요구도 안 해
부산 학생들의 통학권·학습권·건강권의 ‘보루’ 역할을 하는 교육환경평가(교평)가 심의 부실로 인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 교육환경보호위원회가 올해 심의한 교육환경평가 안건 10건 중 8건 이상이 단 1차례만으로 통과됐다. 교평이 개발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거센 이유다. 오늘, 그리고 내일의 부산 학생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학교를 다니려면 교평이 본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산 금정구 부곡동과 서동 일대에는 낡은 주택을 허물고 신축 아파트를 짓는 대규모 주택재개발 사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서금사재정비촉진 A구역(서금사 A구역)을 비롯해 5구역, 6구역에서 연이어 사업이 벌어진다.
특히 3개 부지에 지하 5층, 지상 28층~49층 총 13개 동 2352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설 서금사 A구역은 사업지 인근에 유치원과 초중고 등 교육시설이 밀집돼 있다. 공사 구역 주변에는 유치원 2곳, 초등학교 2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2곳 등 교육시설이 8개나 있다.
서금사 A구역에 대한 교육환경평가는 지난 7월 17일 부산시교육청 교육환경보호위원회(교보위)에서 다수결로 통과됐다. 지난 4월 24일 1차 교평 심의에서 한 차례 보류됐지만 2개월이 지나 2차 심의가 열렸고 통과 결정이 내려졌다. 사업지 주변에 교육시설이 8개나 있지만 심의는 단 두 차례 열렸다.
두 차례 심의마저도 부실했다는 정황이 가득하다. <부산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교보위는 서금사 A구역이 제출한 교육환경평가서 일부 내용이 교육환경보호법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함에도 제대로 된 지적 없이 ‘승인’을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이 제출한 1-1획지 공사에서 예상되는 소음도 예측 결과에서는 부산정보관광고 식당동 1층의 소음 예측 결과가 59.3데시벨(dB)로, 법적 허용 기준치인 55dB을 초과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교보위는 만족 여부를 묻는 칸에 ‘만족’ 의견을 나타냈다.
당시 교평 심의는 교육환경평가 전문기관 권고도 반영하지 않았다. 조합이 낸 교육환경평가서에서는 A구역 3-1획지와 인접한 동현중은 소음 저감 대책에도 기준치인 55dB보다 조금 낮은 52~54dB의 소음이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대해 한국교육환경보호원(보호원)은 소음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조합이 제안한 ‘8m 높이의 가설 방음 패널 + 이동식·풍선형 방음벽’ 대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가설 방음 패널의 높이를 재산정해 높일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조합은 보호원의 권고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고, 8m 가설 방음 패널만으로도 소음 저감 목표 기준을 만족한다고 평가서에 적었다.
보호원은 학교 앞 도로 경사도를 최대한 안전하게 조정하기를 바란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동현중 앞 도로 경사도가 높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조합 측은 구체적인 보완 대책 없이 ‘공사 후 학교앞 도로 정비시 경사도를 최대한 안전하게 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담은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교보위는 조합 측 제시 방안 그대로 교평을 통과시켰다.
시교육청은 교보위 위원들이 지적한 보완 조치들을 충분히 반영해 심의를 마쳤다는 입장이다. 시교육청 강준현 학생학부모지원과장은 “조합이 제출한 자료가 교육환경보호법상 기준을 모두 충족하며, 교보위 위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강 과장은 “교보위를 거치면서 통학로 주변 안전 요원을 조합이 처음 제안한 26명에서 46명으로 늘리고, 각 학교와의 상설 협의체를 구성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환경보호법이 정하고 있는 법적 기준은 학생 안전과 학습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평을 거치면서 학생 안전 확보와 불편 해소 방안이 더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는 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한 전직 교보위 심의위원은 “법 기준에만 맞춘 교육환경평가서가 제출되더라도 교보위는 현장점검 등을 거쳐 학생 안전을 더 확보해야 하고 보완할 사항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며 “교평이 더욱 철저하게 진행돼야만, 학생들의 안전을 더 잘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