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망가진 결혼에서 잘 빠져나오세요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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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 / 레슬리 제이미슨

남편과 별거를 결정하고 13개월 된 아기와 원룸에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저자는 어렸을 때 이혼식이 있는 줄 알았단다. 제단 앞에서 시작해 잡았던 손을 풀고 각자 따로 복도를 걷는 식 말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은 수전 손택에 비견되는 강렬한 문장으로 동시대 가장 사랑받는 에세이스트로 자리매김한 레슬리 제이미슨의 신작이다.

일과 육아의 병행이 누구인들 고달프지 않았으랴. 저자 역시 엄마이자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아이를 향한 지독한 사랑을 숨김없이 고백한다. 이 평범한 이야기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저자의 글쓰기가 지닌 특유의 매력 때문이다. 무엇이든 정확하게 쓰고자 하는 끈질김과 성실함, 그리고 지나치다고 할 정도의 솔직함에 경탄하게 된다.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은 결혼 생활의 불화와 이혼 과정이다. 역시 이혼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저자는 그동안 부모와 맺어온 복잡한 유대 관계를 돌이켜본다. 혹시나 실패한 결혼 때문에 아이에게 불충분한 가정을 주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한다.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이내 깨닫게 된다. 망가진 결혼에서 빠져나오니 사랑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느껴진다니…. 여러 역할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성장담이자,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인생의 실패와 상처 위에서 삶을 재건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그녀가 한국식 찜질방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에서 K컬처의 또 다른 위력을 실감한다. 이 젊은 여성 작가의 글은 그야말로 매혹적이다. 자꾸 줄 치다 보니 책 읽기가 느려지고, 그가 이전에 어떤 책을 썼는지 찾아보게 된다.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송섬별 옮김/반비/316쪽/1만 8000원.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 표지.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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