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원폭 피해자 자손들이 신체적·정신적 고통, 누구 책임입니까”
원폭 피해 2세인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회장
부산 거주, 노르웨이 오슬로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
내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 80년 되는 해
“특별법 개정 통해 원폭 피해 2, 3세에게도 지원을”
“내년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8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계 곳곳에 배치된 핵무기를 폐기하고 전쟁과 핵의 피해자가 다시는 지구상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약속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지난 10일(현지 시간)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부산으로 돌아온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이태재(65·부산 거주) 회장의 시상식 참석 소감이다. 그는 원폭 피해 2세다.
이 회장은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수상단체인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니혼히단쿄·피단협) 대표단 28명과 한국 대표로 초청받아 원폭 피해 1세인 정원술(81·경남 합천 거주)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과 참석했다. 니혼히단쿄는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고 있는 단체다.
이 회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정 회장의 말을 영어로 통역했다. 그는 정 회장과 한복 차림으로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들의 참석은 수상단체인 니혼히단쿄가 한국 피해자 2명을 초대한 것이다.
이 회장은 오슬로에 도착해 시상식과 연회, 현지 학교 행사 참석 등 일정을 소화하며 한국인 원폭 피해에 대해 증언했다.
“지난 80년간 고통 속에 살았을 한국의 피폭자들이 생각나 목이 메고 말하기 힘듭니다.” 그 피폭자 가운데는 이 회장의 아버지도 있다.
이 회장은 “아버지도 끝까지 일본에서 승소하고 한 달도 채 안 돼 돌아가셨고, 지금도 한국의 많은 분이 고통 속에 계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부친은 나가사키 미쓰비시 군수공장으로 징용을 갔다가 원폭 피해를 겪었다. 평생 천식과 피부 질환을 앓다가 2000년대 중반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지원의 길을 연 일본 법원 판결 직후 별세했다.
그는 “2, 3세 중 고통 속에 있는 분도 많은데 따뜻한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어른들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목소리를 들어 다시는 전쟁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후손이 양지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핵보유국들부터 핵무기 금지 조약에 참여하고 핵우산 속에 있는 한국과 일본도 가입함으로써 핵이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내년 원폭 피해 80년을 맞아 일본·미국은 사죄·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이지만 한 번도 사죄한 적이 없고, 미국은 원자폭탄을 제조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했지만 아무런 사죄나 보상이 없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 있는 우리 국가는 뭐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원폭 피해 2~3세들이 태어나면서 고통을 받았다. 이미 전쟁이 끝난 지 80년이 다 되어 간다. 태어나면서부터, 성인이 되면서 장애를 갖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살기가 힘들다. 장애인을 두고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말을 부모들이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은 1세대만 생활한다. 이어서 들어가야 한다. 그 공간이 비어가고 있다. 처음에 110명에서 60여 명이 계신다. 공간을 비워두고도 못 들어가고 있다”며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말하다 목이 메 중간중간 멈췄다.
“아직도 한국 원폭 피해자들의 자손들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누구의 책임이며 누구의 잘못입니까.”
“원자폭탄의 피해자 74만 명 중 10% 이상인 10만여 명이 한국인이다”며 “그중 5만 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4만 3000여 명이 귀국했으며 현재 1700여 명의 한국인원폭피해자가 생존해 있다”고 덧붙였다.
원자폭탄의 피해는 피해 당사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정신적·신체적 고통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현상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회장은 “한국인 원폭 피해 실태를 국가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특별법 개정을 통해 원폭 피해 2, 3세에게도 지원이 닿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원인불명의 각종 질환을 안고 살며 사회에서 소외된 원폭 피해자 2세에게 정부가 상담, 심리 치유 서비스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폭 피해자 2세 등 후손들이 지원 대상에 포함되고 원폭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제반 지원 사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더불어 피해자 실태 조사가 단순한 요식 행위에 불과한 현행 특별법을 개정해 피해자들의 건강 상태, 후유증 등을 심층 역학 조사해야 합니다.”
그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로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과 피해의 대물림, 피폭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후손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마지막 당부를 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는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들> ‘한 발의 원자폭탄 피해 한국원폭피해자를 아시나요’ 부산지부 회원 증언 80년사 히로시마, 나가사키 11월 5일과 <끝나지 않은 여정>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 기록 사진집)을 2023년 11월에 발간했다.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