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실패할지 모르지만, 계속 나아갈 겁니다”
■ 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 / 몽실
부산 한 보육시설 졸업한 청년들
자립하고 후배에 멘토 역할 자임
혼자가 아니라고 손 내밀어 주길
‘1990년 10월의 어느 날, 나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전봇대 밑에 버려졌다.’ <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의 시작이다. 저자는 부산의 한 보육 시설에서 자란 8명의 청년이다.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보육시설에 들어왔다. 가까운 어른의 선택이거나, 아니면 자발적이거나.
소중하게 다뤄졌던 영유아 시절이 누구나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되면 초등생부터 고등학교 형, 누나까지 생활하는 큰 시설로 가야 했다. 큰 시설에 입소하면 고등학생 큰형들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 보육시설에 온 뒤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단 하루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안 느낀 날이 없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나랑 친구를 안 해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으로 학창 시절 내내 비밀을 간직해야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은 이 글을 쓴 이가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다짐한 사실이다. 그는 지금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고 있다.
만 18세가 되면 보육 시설에서 나와 자립해야 한다. 이들을 ‘자립 준비 청년’이라고 부른다. 가족도 없고, 집과 사회도 경험해 보지 못한 청년들에게 이제 밖으로 나갈 때라며 등을 떠미는 것이다. 힘들게 집을 구하고, 처음 집에 들어가면 막막할 수밖에 없다. “보육시설을 떠난 첫날 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눈앞이 흐려지면서 양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항상 시끌벅적하게 살다 집에 와도 누구 하나 반겨 주는 사람이 없으니 천상천하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아프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이들은 스스로 후배들의 멘토가 되기로 했다. ‘몽실’은 부산의 한 보육시설을 졸업한 8명의 청년이 모인 공동체이다. 꿈 몽(夢), 열매 실(實), ‘열매를 꿈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2021년에는 시설 고등학생들과 결연한 ‘자립 멘토링 프로그램’, 2022년부터는 초·중학생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는 ‘너나들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몽실은 부산대 근처 골목에서 자립 준비 청년들의 아지트 같은 카페 ‘몽실커피’를 열기도 했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부산에 지금도 이런 곳이 한 곳쯤 밤에도 환하게 불을 켜고 있으면 참 좋았겠다.
‘가족’은 따뜻하고도 힘든 미묘한 단어다. 이 책에서 눈길이 갔던 구절 몇 개를 소개한다. 가족의 의미를 각자 되새겨 보면 좋겠다는 뜻이다. 먼저 ‘아빠가 되어 보니, 사랑을 알겠다’라는 글이다. “나는 자녀를 낳기 전까지 부모님을 용서하지 못했고 무책임하다고 원망하며 살았다. 내 상처는 아물지 못했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부모님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을 줘 보니 내가 받은 사랑이 보였다. 그제야 내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았다.” 다음은 ‘내가 살아야 할 이유’다. “내게 죽음이 두려운 순간이 찾아왔다. 지킬 것이 생긴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되다니…. 내가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자녀를 가진 것은 축복이었다. 자녀는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동화 속 해피엔딩입니다’이다. “나는 한 번도 행복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어서,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런 나에게 행복이 찾아왔다. 내 나이 서른이 넘은 어느 날이었다. 해가 진 저녁, 달빛과 가로등이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비추었다. 남편이 앞장서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고, 나는 뒤따라가고 있었다. 그 평범한 순간이었다. 나는 행복을 발견했다.”
배우 신애라 씨는 “자신의 선택도, 자신이 해 온 일의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부모 없이, 가정 없이 자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우리 주위에 2만여 명이 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의 마음이 항상 궁금했어요. 이 책을 읽으며 그 마음이, 그리고 그 상처가 그대로 느껴져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슬픈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며 손잡을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추천사를 썼다. 몽실커피는 문을 닫았다. 이들은 “우리는 또 실패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속 나아갈 것이다”라고 말한다. 몽실 지음/호밀밭/272쪽/1만 68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