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흰 국화, 슬픔을 담다
꽃은 노래를 만들고 시를 읊게 하며 이야기를 낳는다. 때론 슬픔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꽃이 바로 국화이다. 추위에 강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귀한 꽃으로 여겼다. 중국 동진 시대의 시인 도연명은 집에서 국화를 길렀을 정도로 그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리가 내린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하여 높이 기렸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국화꽃을 사군자의 하나로 여기며 좋아했다. 특히 다산 정약용의 국화꽃 사랑은 유별났다. 그는 촛불 앞에 국화를 두고 그 그림자를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 일본에서는 벚꽃과 함께 일본 황실을 대표하는 꽃으로 여겨진다.
국화꽃은 장례문화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장례식에 국화를 사용하는 관습은 오래된 것으로, 4만 년 전 구석기시대 유물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될 정도다. 1979년 충북 청원군 두루봉에서 구석기 동굴인 홍수굴이 발견됐다. 당시 동굴에선 네댓 살가량의 어린아이 유골도 함께 출토됐는데 유골 위에 고운 흙이 뿌려져 있었고 그 속에서 국화꽃 가루가 나왔다. 이라크 샤니다르 동굴에 있는 6만여 년 전 네안데르탈인 무덤에서도 수레국화 등 여덟 종류의 꽃가루가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 꽃가루가 외부에서 날아온 게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 바쳐진 꽃다발에서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요즘 빈소나 분향소에서 국화를 헌화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란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장례식에 국화꽃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구한말 개화기부터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서구 문화가 들어오면서 상복이 간소화되고 영전에 꽃을 바치는 풍습이 생겼다. 국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에서 장례식이나 추모 행사 때 많이 사용하는 꽃이다. 특히 흰 국화가 그렇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종종 흰 국화 꽃말에 애도와 관련된 의미가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꽃말은 성실, 진실, 감사다. 동양에서는 하얀 국화가 조의를 의미하고, 서양에서는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장례식이나 추모 행사에서 흰 국화를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이미지가 더해져 망자의 안식과 영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전남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국가 애도 기간을 맞아 전국 곳곳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하얀 국화꽃을 든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부산시청 1층 로비에도 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하얀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애도 기간이 되었으면 한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