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중국의 미소 외교
중국인들은 좋은 일이 있어도 크게 기뻐하지 않고 나쁜 일이 생겨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였던 루쉰(1881~1936)이 당초 의학을 공부하다 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 배경에도 이런 중국인의 무표정이 영향을 미쳤다. 루쉰은 의술로 중국을 구하고자 일본 유학을 떠났지만 그곳에서 수업 중 러시아군의 중국인 스파이가 일본인에게 처형당하는 모습을 같은 동족인 중국인들이 무표정하게 지켜보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육체의 치유보다 정신의 치유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 문학을 선택하게 된다.
몇 년 전 인공지능(AI)이 얼굴 생김새를 바탕으로 한국, 중국, 일본인을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구분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받았다. 연구에 따르면 AI는 헤어스타일과 표정에서 한중일 3국 간의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했는데 특히 웃는 얼굴은 남녀를 불문하고 일본인이 가장 많고 중국인이 가장 적다고 분석했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중국인들의 무표정한 특징을 잘 읽어냈다는 사실이다.
최근 중국 외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과거와 달리 ‘미소 외교’에 나선 정황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미소 외교는 늑대처럼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전랑(戰狼) 외교와 정반대의 접근법이다. 지난 14일 중국과 일본 여당 교류협의회가 6년여 만에 개최되면서 양국 간 화해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에서 중국이 전랑 외교에서 미소 외교로 방침을 일부 변경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홍콩 문제 등으로 악화됐던 영국과는 경제·금융 대화를 6년 만에 재개했고 지난해 12월에는 호주산 소고기 수입 금지를 해제하며 호주와의 무역 분쟁도 끝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마치 전랑 외교가 없었던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만 등에서 군사적 위협을 지속하는 점을 들어 중국의 외교 태도 변화에 진정성이 의문시된다는 비판도 있다. 전랑 외교를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중국인의 표정을 이야기할 때, ‘중국인은 화가 날수록 웃는다’는 말이 있다. 고대 중국의 병법서 〈삼십육계〉에서 제10계는 소리장도(笑裏藏刀)로 ‘웃음 속에 칼날을 숨긴다’는 뜻이다. 이는 상대방을 안심시킨 뒤 허를 찔러 공격하는 계책을 의미한다. 중국의 미소가 단순히 경계심을 풀려는 전술적 변화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이 언제 전랑 외교로 돌변할지 모른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