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지역 기업 후원으로 만들어진 롤렉스 러닝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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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 러닝 센터 전경. 이상훈 제공 롤렉스 러닝 센터 전경. 이상훈 제공

새로운 도시를 방문하면 루틴처럼 하는 일이 있는데, 먼저 해당 도시의 공연장과 미술관을 찾아보고, 두 번째는 프리츠커 수상자들의 건축물이 있나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다. 때로는 두 가지가 겹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용도의 건물을 만나기도 한다.

마침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정이 있었고, 앞서 한두 시간 여유가 있어 이웃 도시 로잔을 방문했다. 덕분에 늘 궁금했던 ‘롤렉스 러닝 센터’를 찾아보기로 했다. 루브르 랭스와 뉴욕 신 현대미술관을 설계한 ‘사나(SANAA)’가 디자인했다.

롤렉스 러닝 센터라는 명칭만으로는, 제네바에 본사를 둔 롤렉스의 R&D 센터가 아닐까 생각해 출입에 대한 기대는 크게 가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러닝센터는 EPFL 즉, 로잔 연방 공과대학교 내 연구 도서관의 명칭이었다. 대학 내 연구 도서관이지만, 특별한 통제는 없었다.

러닝 센터는 50만 권의 인쇄본을 소장, 유럽에서 가장 큰 과학 컬렉션을 보유한 연구 도서관이라고 한다. 내부 분위기는 말 그대로 러닝 센터, 대규모 학습 공간이었다. 라이브러리가 아닌 러닝 센터라 명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형 독서실 같은 분위기였지만, 자유분방하게 보였던 이유는 공간 덕분이었다. 규격화된 공간이 아니라 ‘보이드(void) 건축’ 미학이 적용됐다.

단층이지만 다채로운 높낮이를 가진 롤렉스 러닝 센터 공간. 이상훈 제공 단층이지만 다채로운 높낮이를 가진 롤렉스 러닝 센터 공간. 이상훈 제공
구획 없이 보이드 된 롤렉스 러닝 센터 학습 공간. 이상훈 제공 구획 없이 보이드 된 롤렉스 러닝 센터 학습 공간. 이상훈 제공
해 질 무렵 바라본 롤렉스 러닝 센터. 이상훈 제공 해 질 무렵 바라본 롤렉스 러닝 센터. 이상훈 제공
콘크리트 슬래브와 투명 유리로 만들어진 롤렉스 러닝 센터의 굴곡진 측면. 이상훈 제공 콘크리트 슬래브와 투명 유리로 만들어진 롤렉스 러닝 센터의 굴곡진 측면. 이상훈 제공
레만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롤렉스 러닝 센터 내부. 이상훈 제공 레만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롤렉스 러닝 센터 내부. 이상훈 제공

롤렉스 러닝 센터는 넓고 큰 단층의 판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사나의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콘크리트 슬래브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군데군데 매스가 들어 올려져 아치를 만들고 있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형상인데, 들어 올린 판 하부는 자연스럽게 통로가 되어 사람들이 지나다녔고, 매스 중간에는 원형의 큰 중정이 있어 다채로움을 더했다. 완만한 아치형 콘크리트 슬래브에는 기둥이 일절 없으며, 슬라브 자체가 바닥에 면하면서 하중을 받고 있다. 이는 내부에 들어서도 계단 없이 자연스럽게 구릉을 오르는 느낌으로 공간이 연속된다. 경사면에는 다채로운 색깔의 빈백이 배치돼, 연구 센터라기보다는 라운지 같은 느낌도 든다. 대부분의 공간은 별도 칸막이 없이 구획돼 있으며, 일부 연구실만 구획됐다. 그룹 활동이나 기타 회의, 세미나를 할 수 있는 버블이라 불리는 독립 공간도 이색적이었다.

사나는 2004년 국제 설계경기를 통해 최종 선정됐는데, 당시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장 누벨, 헤어초크 드 뫼롱 등이 경쟁했다. 2010년 2월 개장하고, 그해에 사나가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롤렉스 러닝 센터의 건축비는 총 1억 1000만 스위스 프랑(한화 1700억)이 들었으며 롤렉스, 로지텍, 네슬레 등 제네바 또는 인근 레만 호수에 본사를 둔 민간 기업들이 상당 부분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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