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오로라보다 옆 사람 체온이 낫지 않을까요”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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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작가 세 번째 소설집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소통 어긋남에 관한 이야기

올해로 등단 21년을 맞은 서정아 소설가가 세 번째 소설집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를 출간했다. 올해로 등단 21년을 맞은 서정아 소설가가 세 번째 소설집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를 출간했다.

200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올해로 등단 21년을 맞은 서정아 소설가가 세 번째 소설집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강)를 출간했다.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린 이번 소설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통의 어긋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책을 잡자마자 단박에 다 읽고 말았다. 서 소설가의 작품은 지루할 틈 없이 빠르게 읽혀 독자들에게 재미를 안겨 준다는 평가가 사실이었다.

표제작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는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잘 안다고 하는 생각이 그저 자신이 만들어 낸 기대나 환상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멀리 노르웨이까지 찾아가 힘들게 만난 희미한 오로라가 그렇게 기다렸던 그 오로라가 맞는지 의심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하늘의 색이 좀 달라지는 것보다 친구와 술이나 마시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거대한 환상을 쫓기보다 현재의 작은 것들을 누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미줄’은 가족이란 대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더럽다”고 말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가족끼리 뭐가 더러워”라고 반박한다. “가족이라도 더러운 건 더러운 거야”라고 항변하는 여자가 이상한 것일까. 거미줄은 거미의 집이면서, 동시에 먹잇감을 낚아채는 덫이기도 하다. 거미줄은 비유이자 은유다. 지금의 가족이 언제까지 이상적인 제도로 남아 있을지 궁금해진다.

‘서로에게 좋은 일’은 코로나 시절이 배경이다. 모두가 힘든 상황이 되면 어려운 사람은 더 힘들어지고, 격차는 더욱 심해진다. 다시 만나 가깝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단순한 오해에도 보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겠다고 돌아선다. 한국 사회에서 경제력의 차이는 계급이 되고 말았다. ‘개미’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 힘들게 마련한 중산층 아파트에서 애집개미가 어느 순간 마구 불어나 없어지지 않는다. 개미는 자본주의 욕망의 상징이다.

뒷부분으로 가면서 왠지 소설의 느낌이 살짝 달라진다. 여전히 상처를 주고받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희망적이다. ‘황벽나무 노란 속껍질’에 나오는 “그러니까, 이야기를 남겨요/그걸 누가 읽을까요/누군가는 읽어요/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읽고, 다시 무언가를 쓸 겁니다. 그렇게 이어져요. 사라지지 않습니다”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서 소설가는 “전에는 고통이나 슬픔 같은 데 몰입해서 글이 다소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작은 희망들을 발견했고, 그래서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힘이 조금 더 생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서 소설가의 소설은 상처의 기원을 파고들어 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올해 목표인 첫 장편소설도 궁금해진다. 그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하고 싶다. 개개인 사이에도 있고, 구조적인 폭력도 있을 것이다. 폭력을 여러 각도에서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모두는 이 사회의 폭력성이 극단으로 치달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있다. 봄을 기다리듯이 폭력을 이겨낼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표지.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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