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스무트-홀리 관세법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1920년대 미국을 흔히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 일컫는다.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이라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미국은 글로벌 리더로 올라섰고 기술혁신을 통해 대량생산되는 공산품이 흘러넘쳤다. 낙원이 눈앞에 펼쳐질 듯한 풍요 속에 1929년 3월 허버트 후버가 3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의 선거 캠페인 구호도 ‘모든 미국인의 차고에 자동차를! 모든 미국인의 식탁에 닭고기를!’이었다.
그러나 낙원의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해 10월 29일 주가가 대폭락하는 ‘검은 목요일’을 시작으로 미국 경제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대공황의 시작이었다. 후버 대통령이 꺼내 든 칼이 관세였다. 공화당 소속 리드 스무트 상원의원과 윌리스 홀리 하원의원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발의했다. 후버는 1930년 6월 2만여 개 품목의 관세를 평균 59%, 최고 400% 인상하는 해당 법안에 서명했다. 포드차 창업자 헨리 포드와 JP모건 토머스 러몬트 회장이 백악관을 직접 찾아 후버 설득에 나섰지만, 고집을 꺾지 못했다.
결과는 역사가 기록한 그대로다. 세계 각국의 보복관세로 미국 수출도 급감했고 세계 교역량은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보호무역 강화와 경제 블록화만이 살길이라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됐다. 자국 경제를 위해 이웃 나라를 거지로 만드는 이른바 근린궁핍화(beggar-my-neighbor) 정책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일본의 군사적 모험과 독일, 이탈리아의 파시즘 광풍도 이런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슘페터는 “관세 인상을 가정상비약쯤으로 여기는 미 공화당의 전통이 대공황을 세계로 확산시키고 2차 세계대전의 씨앗까지 잉태했다”고 했다. 유능한 CEO 출신에 누구보다 훌륭한 경제대통령으로 기대됐던 후버는 미 역사상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관세 강공 드라이브에 나서면서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소환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와 언론은 1930년대 대공황에 비유하며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후버와 똑같다. ‘관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트럼프의 광기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국가 경제의 많은 부분을 대외 교역에 의존하는 우리는 풍전등화의 처지다. 트럼프가 당긴 무역전쟁 방아쇠가 파시즘 광풍이나 세계대전의 역사로 반복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해야 하는 요즘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