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 농업 부서 혁신 방안 검토…110년 전통 잠업 존폐 ‘위기’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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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토크서 건의…조직 개편 논의
일부 부서 통폐합 불가피…잠업도
제조업·융복합산업 등 악영향 우려

누에 사육 모습. 경남은 한때 잠업전습소가 설치될 정도로 잠업이 활성화돼 있었지만 지금은 크게 축소된 상태다. 김현우 기자 누에 사육 모습. 경남은 한때 잠업전습소가 설치될 정도로 잠업이 활성화돼 있었지만 지금은 크게 축소된 상태다. 김현우 기자

경남도가 오래된 농업 관련 부서 구조 개편을 검토하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잠업 부서가 더 축소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6일 경남도 등에 따르면 최근 농업기술원 연구·지도 역량 강화 및 조직 편제 개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앞서 지난달 14일 고성군에서 열린 경남도지사 도민 상생토크에서 이 같은 건의가 나왔고, 이에 대해 후속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농업 환경이 바뀌는 만큼 조직도 바뀌어야 한다는 건데, 박완수 도지사는 부서별로 자체 혁신 방안을 구상하라고 지시했다. 시대 흐름에 맞지 않거나 농업 규모가 줄어든 부서는 축소나 개편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때 경남을 대표하던 농업이었던 ‘잠업’도 개편 칼날에 직면해 있다. 잠업은 뽕나무를 키우고 누에를 사육해 고치를 생산하는 농업으로, 고대로부터 비단 의복 등을 생산하기 위해 중요한 산업의 하나로 발전돼 왔다.

세계 5대 실크 주산지인 진주는 1914년 진주잠업전습소가 설치될 정도로 잠업이 활성화돼 있었다. 전습소는 1918년에는 원잠종제조소로, 이듬해에는 경상남도 원잠종제조소로 이름을 바꾸며 양잠업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잠업이 침체하고 농가가 줄면서 제조소 역할은 축소되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경남도농업기술원으로 이관됐고, 2021년에는 기관 명칭에서 아예 잠업이 빠지고 유용곤충연구소로 재편됐다. 현재 연구소가 곤충산업 전반을 연구하는 상황에서 잠업은 1개 부서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데, 현재 경남에 잠업 농가가 20여 곳에 불과해 또다시 개편 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말이 나온다. 한때 지역 핵심 농업 분야에서 110년 만에 존폐 위기까지 내몰린 셈이다.

경남도는 일단 신중한 모습이다. 아직 조직 개편 논의 초기 단계고, 개편하더라도 부서를 없애는 게 아닌 부서 통폐합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또한, 전문 인력이 남아 있는 만큼 기존에 하고 있던 연구·지원 기능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경남도 관계자는 “잠업을 포함해 농업 관련 부서별 혁신 방안을 찾고 있는 건 사실이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보려고 한다. 효율성이라든지 산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를 보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도농업기술원 조직 편제 개선이 추진되는 가운데 농업 규모가 축소된 잠업이 개편 대상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김현우 기자 경남도농업기술원 조직 편제 개선이 추진되는 가운데 농업 규모가 축소된 잠업이 개편 대상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김현우 기자

반면, 잠업농가와 실크업계 등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기능이 남아 있더라도 부서가 없어지면 앞으로 잠업 관련 예산이나 인력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사업을 확장하는 건 무척 힘들다는 것. 무엇보다 자체 연구소에서 한 부서를 거쳐 이제 한 분야로까지 축소된 만큼 향후 아예 잠업 담당이 사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실크업계는 실크 원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지역 잠업농가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다만 국내 연구진과 농가가 해외에 잠업 기술을 이전해 주면, 반대급부로 해당 국가의 실크를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우즈베키스탄과 이러한 형태로 원사 수입을 이어오고 있는데, 잠업 부서가 축소되면 이러한 기회조차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실크업체 관계자는 “해외 기술 이전을 통해 질 좋은 실크를 싸게 수입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우즈베키스탄 사례를 통해 확인했다. 잠업을 확장하려는 국가가 여전히 많은 만큼, 잠업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잠업 기술 이전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실크업계는 스카프·한복 등을 만드는 제조업에서 벗어나 커피·빵·화장품 등 6차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실제 실크커피가 잠업 부서의 도움을 받아 탄생했는데, 이러한 기능들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경상국립대 강덕제 문화융복합학과 교수는 “잠업이라고 하면 최종 산출물이 실크로 알려져 있지만, 중간에 나오는 생산물들이 많다. 누에를 활용한 의약품, 화장품은 물론, 우주항공산업의 한 분야에서도 사용될 정도다. 축소가 아니라 고부가가치 산업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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