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대응 매뉴얼, 피해자가 직접 만들어 공유
전국대책위, 대응책 마련 공개
기자회견 방안 등 공론화 전략
경찰 수사 공동 대응 방식 담아
“수만 피해자에 실제 도움 기대”
전세사기에 대응하기 위한 피해자대책위 구성 방법 등을 담은 매뉴얼이 공개됐다. 정부·지자체 무관심 속에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한 매뉴얼을 마련하고 돕는 모습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이하 전국대책위)는 전세사기 피해를 입었을 때 대응하기 위한 ‘전세사기 피해자대책위 매뉴얼’을 공개했다고 17일 밝혔다. 전국대책위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중심이 돼 지난해 4월 발족했다. 피해자 소통 공간 마련, 전세사기 피해 구제·예방 대책 마련, 가해자 형사처벌 강화 등을 요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부산·인천·경기·대구·경산 등 전국 5개 지역의 피해자대책위를 비롯해 여러 피해자 모임과 연대한다.
매뉴얼은 전세사기 피해를 당하면 먼저 대책위를 구성해 내용을 파악한 후 후 공론화, 임대인 형사처벌 공동 대응, 지자체·지방의회에 지원 요청 등의 전략으로 대응하라고 조언한다. 먼저 전세사기범 일당은 누구이고, 어떤 사람들이 가담했는지, 그들의 사기 수법은 무엇이었는지 파악해야 한다. △소유권 이전 수법을 활용한 무자본 갭투자 방식 △건축업과 임대업을 겸하며 시세를 조작한 수법 △다가구주택의 선순위 임차보증금 허위 고지로 인한 사기 △다세대주택 공동담보 설정으로 인한 사기 등 수법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피해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우선 파악해야 한다. 피해 세대 명단과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 규모는 비교적 빠르게 취합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후 △전체 피해 세대 중 강제퇴거 위험이 있는 후순위 피해자 비율 △최우선변제 대상에 해당하는 소액임차인 비율 △보증보험에 가입한 피해자 비율 등의 정보도 파악하면 좋다.
공론화를 위한 기자회견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매뉴얼은 기자회견 취지 설명과 진행, 구호 선창 등의 역할을 할 사회자 1명을 선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3명 이내의 당사자도 필요하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아니지만 기자회견의 취지에 공감해 연대의 말을 해줄 수 있는 2명 이내의 연대발언자 역시 도움이 된다. 이처럼 단체 기자회견을 처음 해 보는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형사적 단계에서는 공동 대응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 중 3호 ‘2인 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 4호 ‘임대인이 고의적으로 보증금을 미반환한 경우’ 등 두 가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다른 피해자와 협력해야 한다. 특히 4호 요건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수사 개시가 필요하다. 피해자 단독으로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경우, 일선 수사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수사가 더디게 이뤄질 수 있다. 같은 임대인의 피해자가 많을수록 경찰이 수사에 빠르게 착수할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피해자들이 협력해야 한다.
지자체와 지방의회로부터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지자체에서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긴급생계비·이사비를 지원하거나, 시설 관리 문제에 대응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또한 여러 이해관계자 간 풀기 어려운 문제를 조율하는 데 지방의회 의원이나 지역구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전국대책위는 “전세사기로 삶이 파괴된 수만 명의 피해자들은 외롭게 방치된 경우가 많다”며 “전세사기는 개인의 귀책이 아니라 제도적 결함에서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매뉴얼을 통해 먼저 나서서 행동한 사람들의 존재에 용기를 얻고, 전세사기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