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수도 부산, 보석같은 작품 탄생시켰다
‘한국 근현대 화가들의 …’ 발간
6·25전쟁 부산 피란 온 작가들
부산 예술인과 교류 작품 활동
대가들의 부산 시대 귀한 자료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은 당시 전국 예술인을 부산에 모이게 했다. 피란 수도 부산에서 전국 예술가들은 교류했고 서로 예술이 융합하고 포용 되며, 보석 같은 작품들이 탄생했다. 근현대 한국 대표 작가의 명화들이 이 시기에 탄생한 것이다. 김환기를 비롯해 이중섭 권옥연 김은호 박고석 변관식 유영국 장욱진 천경자 이응노 문신 등이 부산으로 왔고, 고단했던 피란 생활 속 예술 활동은 각자에게 응원과 공감, 자극과 비평으로 다가가 창작의 씨앗이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피란수도 부산의 예술 활동은 그동안 미술사에서 외면당했다. 전쟁 이후 서울로 돌아간 작가들이 명성을 얻었고 전시와 작품 거래가 서울 수도권 위주로 돌아가며 중앙화단의 활동만 조명됐다. 함께 작업하고 동인단체를 만들어 전시까지 한 동시대 작가였지만, 부산에 남은 이들은 문화 불모지 지방 작가로 전락했다.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했고 최근에는 미술 비평과 기획,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박진희 마루 아트컴퍼니 대표가 알려지지 않았던 대가들의 부산시대를 조명하고 나섰다. 최근 출간한 <한국 근현대 화가들의 부산시대>은 지난 10년간 박 대표가 모은 실제 자료를 통해 1000일간 이어진 피란수도 부산의 찬란한 예술 현장을 재현해 냈다.
“2015년 부산발전연구원을 통해 <피란수도 부산의 문화예술>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었죠. 1990년대부터 미술 관련 일을 했지만 부산 출신인 나조차 이와 관련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를 계기로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로 일하며 ‘부산 토박이, 토벽동인의 재발견’ ‘피란수도 부산, 절망속에 핀 꽃’ 등 부산시대를 조명한 전시도 열었고 미술 연구자, 수집가, 원로 작가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확인하며 자료를 모았습니다.”
박 대표는 이 작업을 하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작품과 기록으로 대가들의 부산 시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예술 의지가 가장 뜨거웠던 예술 문화의 전성기 중심에 부산이 있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6개의 대단원으로 구성된 책은 위대한 작가들의 만남, 유례없이 활발했던 전시회, 서구문화 유입의 관문이었던 항구 부산의 특수성, 작업실이자 작가들의 사랑방·전시장 역할까지 했던 광복동 다방들, 장르와 출신에 관계없이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동인단체들, 당시 영도에 있었던 최대 도자기 회사 대한도기에서 일했던 작가들 사연 등이 담겼다.
특히 부산시대가 낳은 명작 51편 그림과 상세한 설명, 해당 작품을 탄생시킨 화가들에 대한 정보, 부산시대 당시 화가의 활동까지 쉽게 풀어 설명했다. 박 대표는 이 작품을 책에 담기 위해 일일이 유족, 작품 소유주, 소장 미술관을 찾아 게재 허락과 저작권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전시 소개 책자까지 발굴해 작가의 글과 동료들의 추천사, 방명록까지 책에서 소개한다. 한국미술의 대가들이 젊은 시절 직접 쓴 작가의 글, 응원의 글은 실제 자료가 주는 감동이 있다. 전쟁 시기임에도 전시 팸프렛의 디자인과 구성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들었는지를 보며 예술 활동에 대한 작가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책에는 외지에서 부산을 찾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부산·경남 출신 작가들의 작품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도 충실하게 담고 있다. 박 대표는 “당시 부산 경남 작가들은 생계가 힘든 외지 작가를 포용해 일자리를 주선했고 예술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는 말을 전했다. 당시 작가들의 교류 현장을 담은 흑백 사진들도 재미있다. 1953년 ‘기조동인전’에 참여한 이중섭, 박고석, 한묵 작가가 부산 광복동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사진을 보면 당시 분위기가 잘 살아있다.
귀한 자료와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 대한 반응은 현재 뜨겁다. 교보문고를 비롯해 대형 서점의 앞자리 가판대를 차지했고 인터넷 서점에선 베스트셀러 표시를 달았다. 박 대표는 “부산의 작은 출판사에서 적은 예산으로 출간하다 보니 책 소개나 마케팅도 하지 못했는데 1쇄가 완판을 앞두고 있다. 부산시대 예술 이야기가 관심 있는 콘텐츠로 인정받은 것 같아 의미 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어린이·청소년용으로도 이 같은 내용의 책을 출간하고 싶고, 피란수도 부산시대에 탄생한 작품들을 모아 전국 순회전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전국 순회전은 기획자 혼자서 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인다. 우선 3월 15일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북콘서트가 계획돼 있어 시민들에게 피란수도 부산시대의 찬란한 예술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