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돼지국밥 로드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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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돼지국밥의 도시라면 일본 후쿠오카에는 ‘돈코츠 라멘’이 있다. 두 향토 음식은 출발점이 같아서 친숙하다. ‘돈코츠 라멘’은 돼지 뼈, 즉 돈골(돈코츠)로 우린 국물이 기본이다. 후쿠오카는 향토 먹거리를 미각 여행의 첨병으로 활용한다. 관광지이자 쇼핑가 캐널시티 5층에 자리한 ‘라멘 스타디움’은 내로라하는 라멘 전문점만 모인 곳이다. 8곳의 유명 라멘집이 팝업 스토어를 내고 경쟁하는 구조다. 지금은 지역 노포 7곳과 홋카이도식 미소(된장) 라멘집 1곳이 영업 중이다. 캐널시티 입주 상가의 부침에도 ‘라멘 스타디움’은 2001년 개장 이후 24년째 전성기를 구가한다.

부산에서는 국제시장, 서면시장 등 전통시장과 대학가, 공원 앞에 국밥 육수를 끓이는 가마솥을 내건 가게가 즐비하다. 상인, 학생, 운전기사, 등산객 등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이 주 고객이다. 저렴하다고 맛이 획일적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재료와 차림새에 따라 개성의 편차가 커서다. 예컨대 돼지머리, 내장, 사골, 닭 뼈 등 육수 재료가 집집마다 다르고, 맑거나 뽀얀 국물과 꾸미, 토렴, 양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부산일보〉 25일 자 보도에 따르면 부산역 앞에 신흥 ‘돼지국밥 로드’가 형성됐다고 한다. 역전 식당가에 캐리어를 끄는 대기 행렬이 흔해지더니 그중 돼지국밥을 찾는 길손이 늘었던 모양이다. 음식만큼 흡입력이 강한 관광 자원이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 2019년 ‘부산을 대표하는 상품’ 설문에서 외지인들은 돼지국밥을 1위로 꼽았다. 돼지국밥만큼 향토성과 개성이 짙은 음식이 없으니 스토리텔링이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부산일보〉의 ‘돼지국밥 로드’(porksoup.busan.com) 외에 정보가 그리 많지 않다.

‘라멘 스타디움’의 장수 비결은 스토리텔링의 디테일이다. 육수 재료와 면, 고명이 어떻게 다른지, 창업 이력과 음식을 만드는 사람 소개까지 가게 입구와 자체 홈페이지에 빼곡하다. 궁금해서 시식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후쿠오카 라멘집이라도 토마토와 야채 육수로 상식을 깨는가 하면, 소면과 중면, 고명의 변주로 가게마다 맛은 천양지차다. 연전에 닭 뼈와 가다랑어, 다시마로 국물을 낸 도쿄식과 정통 후쿠오카식을 각각 음미한 적이 있다. 후쿠오카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법이다. 낯선 도시에서 돼지국밥에 도전한 이들은 어떤 기억을 갖고 돌아갔을까. 탐구심과 즐거움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이 충분한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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