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정상회담 '파국'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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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미·소 정상회담. 갓 취임한 40대의 연부역강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60대 중반의 노회한 혁명가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총리가 마주 앉았다. 핵실험, 군축 등 여러 주제를 논의했으나 뚜렷한 합의 사항 없이 서로의 견해만 확인한 채 회담은 끝났다. 그러나 전체적인 회담 분위기는 나이 많은 흐루쇼프가 20살이나 더 어린 케네디 대통령을 풋내기로 여기는 태도가 감지되는 등 불안불안했던 듯하다. 결국 이 회담은 1년 뒤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이어지면서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 간 핵전쟁 발발 위기를 촉발해 지금도 대표적인 정상회담 실패 사례로 꼽힌다.

외교가의 속설 중 흔히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라는 표현이 있다. 각국을 대표하는 정상이 어렵사리 만나 회담을 했는데도 아무런 합의 사항 없이 끝나면 국내외적으로 적잖은 타격이 되는 만큼 정상회담은 미리 실무진이 쟁점을 조율·합의해 놓은 상태에서 열린다. 이 때문에 실제 정상 간 만남에서 성과 없는 회담은 없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은 먼저 실무진끼리 중요 의제에 관한 합의나 조율이 선결 조건이라는 의미다. 실패할 경우 그 후폭풍은 정상회담 당사국뿐 아니라 타국까지도 미칠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열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근래 보기 드문 최악의 파국 사태로 끝나면서 전 지구촌이 우려하고 있다. 종전 협상 문제 등을 놓고 공개적인 설전으로 충돌한 것은 물론 회담 막바지에는 서로 얼굴마저 외면하는, 차라리 만나지 아니함만 못한 결과를 빚고 말았다. 예정됐던 오찬마저 무산되면서 양국 정상은 밥 한 끼도 함께 하지 못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 파국의 충격은 양국에 전혀 다르게 수용되는 것 같다. 국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국제정치 역시 철저한 갑을 관계의 속성에 기속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정상회담 파국 이후 을의 입장인 우크라이나의 처지가 더 딱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파국 소식을 접한 유럽 각국 정상들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잇달아 전화를 걸어 백악관으로 다시 돌아가 트럼프 대통령과 화해할 것을 권고하는 판이니 자존심 차원을 넘어 국가적인 모멸감마저 느낄 만하다. 하지만 어쩌랴. 사면초가에 처한 약소국의 상황은 지푸라기조차 맘대로 내버릴 수가 없는 것을….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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