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광물, 침탈, 지도자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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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9년 조선 임금 세종은 명나라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금을 조공 물품에서 빼 주길 간청했다. 조선은 땅이 좁고 금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달았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사신은 ‘금 조공 면제’라는 낭보를 가지고 귀국했다. 하지만 세종의 말은 거짓이었다. 조선 땅에 금이 없었던 게 아니다. 단지 캐지 않았을 뿐이다. “1년 금 캐기가 10년 공물 준비보다 갑절이나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형편이라, 백성의 고통을 덜기 위한 배려였다. 이후에도 조선 정부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금의 채굴과 유통을 금했다.

금기를 460여 년 뒤 고종이 깨버렸다. 19세기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온 지구를 헤집고 다니며 수탈과 착취를 일삼던 때. 그들은 조선의 금을 노렸고, 선구는 미국이었다. 개신교 선교사 호러스 알렌은 평안도 운산금광 채굴권을 미국에 넘기라며 고종과 명성황후를 꼬드겼다. 명분은 조선에 대한 미국의 보호(엄밀히는 고종 등에 대한 신변 보장)였다. 1895년 운산금광은 결국 미국에 넘어갔고, 거기서 당시로선 동양에서 가장 많은 금이 생산됐다. 다른 열강들이 이를 두고만 볼 리 없었다. 그들은 미국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했다. 그 결과 러시아,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이 조선의 금광 채굴권을 탈취했다. 금광뿐이었겠는가. 이후 석탄 등 각종 침탈이 이어졌으며 그로 인해 조선은 돌이킬 수 없는 망국의 길을 걸었다. 고종 같은 당시 지도자의 무능과 몰염치가 그랬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처지가 당시 조선의 처지와 꼭 닮았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전쟁 지원 대가로 우크라이나가 가진 5000억 달러 상당의 희토류 등 광물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말이 좋아 공동 개발이지 강탈에 다름 아니다. 양국 간 관련 협정이 차질을 빚고 있지만, 종국에는 미국 뜻대로 될 공산이 크다. 희토류만이 아니다. 티타늄·망간·리튬 등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광물 자원의 가치는 최소 11조 달러가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미국이 독차지하게 내버려 둘 열강들이 아니다. 러시아는 물론 유럽 각국이 저마다의 지분을 주장한다.

러시아와 전쟁을 3년간 치르며 우크라이나 국민의 삶은 처참해질 대로 처참해졌다. 막대한 면적의 영토도 러시아에 뺏기게 됐고, 땅 속 광물도 남의 것이 될 위기다. 미국만 바라보며 무모한 전쟁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잘못된 지도자가 나라를 어떻게 망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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