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못 버리는 병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1928~1987)은 수집광이었다. 그는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 못했다. 그의 물건 중에는 고가의 수집품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래된 우표, 엽서, 진료비 청구서나 영수증, 다 쓴 건전지, 껌 포장지 등 허접한 쓰레기들이었다. 그는 이런 물건들을 담은 수백 개의 상자를 끌어안고 살았다. 1975년 저서 〈앤디 워홀의 철학〉에서 그는 “나 자신은 원치 않는 물건이라도 그것을 버리는 건 내 양심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전형적인 저장강박증 환자였던 것이다. 이 같은 강박증은 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김인숙 작가의 단편 소설 〈자작나무 숲〉은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는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저장강박증은 강박 장애의 일종이다. 흔히 쓸모없거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지나치게 쌓아두는 행동으로 정의된다. 심한 경우 워홀의 집처럼 생활 공간이 물건으로 가득 차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1996년 심리학자들은 이를 심리 장애로 규정하고 관리가 필요한 마음의 병으로 봤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 저장 증상을 가지고 있다. 사람도 자연재해나 큰 사건이 있을 때 라면이나 물, 통조림 등을 사재기하는 걸 보면 결국 저장이란 생존과 관련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부산에서는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는 가구에서 연이어 화재가 발생해 주민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날 인천에서도 유사한 화재가 있었다. 저장강박증은 일반적으로 노인층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사회적 고립 등의 영향으로 젊은층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증상을 가진 이들은 단순히 물건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수집하거나 먹지 못하는 음식을 쌓아두기도 하며 심지어 특정 색채에 집착하기도 한다.
저장강박증은 종종 무기력함과 외로움, 그리고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불안이나 공포에서 비롯된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물건을 치워주거나 정리정돈을 돕는 것만으로는 일시적인 해결에 불과하며 본질적인 개선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생활 패턴의 변화다. ‘더하기’의 삶에서 ‘빼기’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바깥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지속적인 일상생활도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서 끊임없는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현실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