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국민 생선'의 위기
영화 ‘인터스텔라’(2014년 개봉)는 기후 위기가 초래한 식량난을 겪는 미래가 배경이다. 거대한 황사에 일조량 부족, 병해충까지 기승을 부려 재배 가능한 작물은 옥수수뿐인데 이마저도 간당간당한다. 농사를 접어야 할 상황에 내몰린 주인공 쿠퍼는 지구를 대신할 행성을 찾아 우주선에 오른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언제나 그랬듯이!” 쿠퍼가 목숨을 건 여정에 나서면서 딸 머피에게 약속한 건 후세대에 대한 연대 책임이었다.
지난해 한반도를 덮친 역대급 폭염은 미래 기후 재앙의 예고편격이었다. 신기록 경신을 이어간 기온뿐만 아니라 11월까지 한낮에 땀을 흘리게 만드는 여름의 확장은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작물과 과수 재배 한계선의 북상은 옛일이 됐고, 철없는 시대인 요즘은 기후 재난에 따른 먹거리 위기가 일상이 됐다.
땅이 뜨거우면 바다는 끓는다. 지난 여름의 폭염은 어장 지도까지 바꿔 놓았다. 해양수산부의 5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연근해 어업 생산량이 전년 대비 11.6% 감소했다. 오징어(42.1%), 갈치(26.6%), 꽃게(23.3%), 멸치(18.8%) 등 밥상의 단골 어종이 크게 줄었다. 문제는 고수온이 일회성이 아닌 점이다. 한반도 주변 표층 수온은 최근 50년간(1968-2017년) 1.23도 올라 세계 평균 0.48도의 2.6배를 넘겼다. 지구촌 기상 재난의 주범 엘니뇨 현상의 판별 기준이 불과 수온 0.5도 차이인데 비하면 우리 바다는 선을 한참 넘었다.
실제 지난 여름 적정 수온(10~24도)을 훨씬 넘긴 30도 고수온 탓에 연안 어업은 초토화 위기다. 2월 수확이 시작돼 3월부터 계절의 별미로 식탁에 오르는 멍게는 전량 폐사했다. 전국 멍게 유통량의 70%를 차지하는 경남 남해와 거제 양식장에서 성체는 물론 산란과 채묘에 필요한 어미와 새끼 멍게까지 전멸했다. 만만했던 오징어는 어획량이 줄어 마리당 1만 원을 호가하면서 ‘금’징어로 불린다.
훨씬 길어지고 뜨거워진 여름이 온다. 온 국민의 식탁을 풍성하게 했던 ‘국민 생선’은 씨가 말라버린 동해안 명태의 뒤를 따르는 중이다. 고수온에 강한 종자 개량이나 고도의 양식 기술 등의 대책이 당장 필요하다. 하지만 ‘아픈 지구’를 치유할 근본 대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 비등’(global boiling) 시대를 살아갈 후대에 약속할 수 있을까. 언제나 그랬듯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