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후변화 시대, 산불 대응 전략을 다시 짜야 할 때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 국가위기관리학회 학회장
‘괴물 산불’ 대응 초보적 인력 중심
장비·시스템 변화 따라가지 못해
미국·호주는 AI 등 첨단기술 활용
하이드레이트 등 신기술 적극 도입
장기적·종합적 산불과의 전쟁 필요
최근 산불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고, 1000년이 넘는 사찰 두 곳이 완전히 불타버렸다. 피해 면적도 여의도 면적(2.9㎢)의 13배를 넘는 수준으로 역대 최악의 산불 재난 피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산불의 양상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최근 들어 빈번해진 ‘괴물급 산불’은 재앙으로서 정부와 지자체의 제어가 불가능해 보인다.
산불 피해가 이렇게 커진 데에는 기후변화의 영향과 함께 기존의 촘촘하지 못한 산불 대응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기온 상승과 극심한 건조 환경, 예측 불가능한 강풍의 증가는 산림을 불에 취약한 상태로 만들었다. 또한, 침엽수가 산불 피해를 더 키우고 있으며, 임도(林道) 없이 빼곡하게 조성한 산림은 더욱 산불을 확대했다.
다음, 기후변화로 인하여 산불은 대형화되고 있는 데 비해 산불 진화는 여전히 사람 중심, 인력 중심이다. 야간에는 유인 헬기가 뜨지 못하고, 이마저도 오래된 구식 헬기로 인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현장에 투입된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과 소방대원들은 험한 지형과 바람으로 인한 거센 불길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며 화마와 싸우지만 역부족이다. 초동 진화에 실패하면서,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괴물급으로 산불이 커진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산불 대응 체계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산림과 도시의 경계지역 관리 미흡,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와 인력의 부족,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비효율적인 협력 체계, 예방보다는 진화에 치중된 대응 방식, 그리고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 산불 위험도 평가 및 예측 기술 등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호주 정부는 2020년에 산불 위기 대응책으로 ‘국가산불복구청(NBRA)’을 신설했고, 화재 경고 체계를 6단계 분류해 정교화하였으며, 단계별 화재 경고 시스템을 통해 국민 행동 요령을 명확히 정의하고 산불이 예상되는 경우 각 지역에 적용되는 화재 위험 등급을 매일 발표하고 있다.
또한,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인공위성을 기반으로 산불을 관측하며, 미국 오리건주는 오리건주립대가 연구·개발한 산림 다목적 로봇을 산불 조기 발견 및 진화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호주와 미국 등 해외 선진국들은 산불 예방과 진화를 위해 인공지능(AI), 로봇, 인공위성 등을 활용하여 산불 진화 방식을 기존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미래형으로 발 빠르게 전환하였다.
이제 우리도 이러한 선진 사례를 참고하여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산불 대응 전략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 기후변화 시대를 맞이하여, 산불 대응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 위험도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평가할 수 있는 과학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산림청, 소방청, 지자체 등 관련 기관 간 명확한 역할 분담과 함께 통합 지휘가 가능한 단일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산불 위험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둔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첨단기술을 활용한 조기 감지 및 예측 시스템을 강화하고, 대형 산불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와 전문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특히, 그 규모가 갈수록 대형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에서 기존의 장비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스 하이드레이트 소화탄 등을 개발하고 상용화하여 드론이나 헬기를 이용하여 투척하는 새로운 산불 진화 방식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즉,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불타는 얼음으로 알려져 있지만 불이 잘 붙는 메탄가스 대신, 불을 끄는 할로겐족 소화 가스를 저장해 ‘불 끄는 얼음’을 만들어서, 산불 등 화재 현장에 소화탄을 투척하면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녹으면서 나오는 가스가 주위에 불을 끄는 방식으로 해서 산불을 초기에 진화하는 게 필요하다. 산불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후변화 시대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이제는 ‘산불과의 전쟁’이라는 인식 하에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응 체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