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옳은 쪽입니다"
독립 큐레이터
MZ세대 집회 문화, K컬처 저력 확인
응원봉 앞세운 '빛의 혁명' 세대 간 공유
좌우 구분 짓는 극단적 대립 사라져야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 선고가 나오기까지 122일 동안 시민들은 광장으로 모였다. 그 시간을 돌이켜 볼 때 특히 눈에 띈 것은 MZ세대들의 등장이다. 이들은 기존의 시위 형식에서 볼 수 없었던 자신들만의 문화를 집회에 녹여냈다. 이들이 참여한 집회 현장은 K팝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에스파의 ‘위플래시’,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 등을 부르며 친숙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었다. MZ세대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수제 응원봉을 들고나왔다. 당시 이같은 K집회 현장을 지켜본 외신 반응은 뜨거웠다. 로이터통신은 “시민들이 시위에 들고나온 응원봉이 기존의 촛불을 대체하며 비폭력과 세대 간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차세대형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런 분위기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일깨웠으며, 적극적인 시민 참여를 끌어냈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문화적 코드와 정치적 의사 표현을 절묘하게 접목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강국이다. 분단의 악조건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상식적일 때 국가 위상이 서고 그 안에서 기본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과 위상도 반영된다. 1987년 민주주의의 근간을 보여준 민주항쟁, 1998년 IMF를 이겨낸 국민의 저력, 2002년 월드컵의 함성, 2010년 촛불로 이뤄낸 민주주의 등을 보면 그러하다. 특히 탄핵 정국에서 MZ세대들이 응원봉으로 이뤄낸 ‘빛의 혁명’은 386세대와 MZ세대가 공유하는 감동을 전했다. 우리 국민의 커먼센스(Common Sense)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내는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현장에는 기득권자가 아닌 시민이 있었다. 도망가지 않았다. 시민이 하나가 되어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있다. 이제 이 나라의 미래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공동의 것을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사회인 민주공화국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세계사 최초로 무혈 시민혁명을 이룬 민족이자 민주주의 선도 국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미 전 세계는 존경의 시선으로 K컬처, K푸드를 넘어 K민주주의를 부러워하고 있다.
탄핵 정국을 돌이켜 보면 이미 경기는 끝났는데, VCR 판독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누가 봐도 아웃인데 심판들의 이견으로 주심은 판정을 못 하고 관중들은 귀가하지 못하는 꼴이었다. 그 시간은 역대급으로 비현실적이었다. 관중은 야유와 함성으로 경기장을 박살 낼 기세여서 혼란스러웠다. 결정이 나야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본연의 일을 한다. 그렇게 122일 동안 헌재의 결정을 기다렸다. 마지막까지 온갖 낭설들과 소위 정치 1단이라는 자들의 예측 아닌 추측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202504041122’라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간을 맞이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간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22분 동안 지난했던 겨울의 시간에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마그나 카르타’라며 결정문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다. 결정문 중에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란 문장과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사명으로 하여 나라를 위해 봉사하여 온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도록 만들었습니다’란 문장이 필자의 마음속으로 녹아 들어왔다. 장기간의 평의와 숙고를 통해 그 결정문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고 유연한 논리로 작성함으로써 당일 투입된 군인들이 지고 있을 마음의 짐을 그나마 내려 주었다. 이런 것이 법의 힘이다. 국민 대부분은 그토록 장고의 시간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이 결정문을 통해 다시 봄을 기대하게 되었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2025년 봄을 맞이했다. 2025년 4월 4일 청명(淸明)은 세상을 맑고(淸) 밝게(明) 만들기에 좋은 날인 것이다.
지인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탄핵 현장에서는 매주 토요일, 때로는 예정 없이 긴급하게 집회가 열렸다. 대형 스피커, 무대 설비, 행진 트럭 등을 동원해 한 번 집회를 열 때마다 2억 원 이상의 돈이 지출된다고 한다. 1700여 시민단체가 연대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비용은 또다시 시민의 모금과 후원으로 충당해 낸다고 한다. 모든 부채와 책임은 국민의 몫이다. 서글프다. 생활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오르고, 서민들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진다.
이제 시대가 부여한 시간이다. 구조적 모순은 반드시 바로 잡고 좌우로 구분 짓는 극단적 대립, 양비론적 시선들은 이번 참에 하차하시기를!
마침 지하철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옳은 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