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통령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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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지면을 보니 미국 대통령이 총을 맞아 다쳤다고 한다.’

1881년 5월 일본 배 안레이호를 타고 신사유람단 자격으로 일본을 다녀온 조선 관료 이헌영은 자신이 지은 〈일사집략〉에서 위 문장을 통해 처음으로 근대적 의미의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국내에 소개했다. 당시 미국 가필드 대통령 피격 사건이 보도된 일본 신문 내용을 전하는 글이다. 그는 이 문장에 주를 달아 여기에 나오는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국왕’을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국왕을 의미하는 것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된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일본이 영어 ‘president’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진 단어다.

일본은 고대부터 통령이라는 용어를 군사적 의미와 결부시켜 ‘사무라이 두목’ 등의 의미로 곧잘 사용해 왔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타국의 직위를 이를 때 군사적 의미가 담길 경우 통령이라고 번역하곤 했다. 로마 시대 집정관도 처음엔 통령이라 불렀으며 프랑스 나폴레옹의 쿠데타 정부도 ‘통령정부’라는 식으로 번역했다.

일본이 대통령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영어 president를 대통령으로 번역하면서부터였다. 군사적 의미가 담긴 통령에 크다는 뜻의 ‘대(大)’를 붙임으로써 권위를 국왕급으로 올린 것이다. 이헌영이 자신의 책 주에서 대통령이 국왕을 지칭한다고 한 것은 이 번역이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반면 우리가 흔히 대통령이라고 번역하는 미국의 president는 원래 군사적 의미를 최대한 빼기 위해 만든 용어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삼권분립 체계에서 행정부를 이끄는 사람 정도의 뜻으로, ‘회의를 주재한다’ ‘앞에 선다’는 뜻인 preside의 명사형에 불과하다. 영국에서 독립해 공화정을 수립하면서 유럽의 왕 같은 존재를 만들지 않으려는 강박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렇게 국내로 유입된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국의 국가 수반을 일컫는 용어로 안착해 왔다.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과는 달리 일본의 프리즘을 통해 유입된 탓인지 국내에서는 대통령이 제왕적 의미를 지니는 용어로 곧잘 인식되며 현대사에 아픈 상처를 많이 남기고 말았다.

새 정부 출범 첫 날 아침을 맞아 민주적 절차로 새로 뽑힌 대통령이 퇴임 때까지 박수받는 원래 의미의 민주적 대통령으로 남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띄워 본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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