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장티푸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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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하네.” 한때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던 욕설 중 하나다. 이 말은 질병에서 유래됐다. 염병(染病). 전염성을 가진 병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인데, 주로 장티푸스를 속된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 많은 전염병 중에 하필 장티푸스를 지칭하는 말이 됐을까. 장티푸스에 걸리면 보름 넘게 고열에 시달리다 죽게 된다. 변변한 치료법이 없던 옛날엔 많게는 환자들의 절반가량이 사망할 정도로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홍수나 기근 등이 들면 마을에 염병이 돌았고, 일가족이 몰살되거나 동네에 줄초상이 날 정도였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1970년대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장티푸스 환자가 매년 수천 명씩 발생했다. 장티푸스는 이처럼 전염병 중에서 가장 무서운 병으로 인식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염병하면 장티푸스가 떠올라 그렇게 불려진 것이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장티푸스도 욕설로 쓰이던 ‘염병’만큼이나 우리의 인식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최근 ‘질병관리청장이 지정하는 감염병의 종류 고시’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장티푸스를 의무 입원치료 대상 감염병 목록에서 삭제했다. 파라티푸스, 세균성이질, 장출혈대장균감염증, A형간염 등도 함께 없앴다. 위생 상태 개선과 발병 건수 감소 등을 고려해 과도한 기본권 제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질병관리청의 설명이다.

그 자리를 니파바이러스 등 새로운 감염병이 채웠다. 니파바이러스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발생하는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이번에 제1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됐다. 1급 법정감염병이 추가된 것은 코로나19 이후 5년 만이다.

니파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열, 두통, 기침, 인후통,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감염 후반에는 일부 뇌부종이나 뇌염으로 이어진다.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으며 치명률이 40~75%로 높은 편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니파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보고된 적은 없다. 하지만 인도의 경우 2001년 첫 환자가 보고돼 지난해까지 총 104명의 환자가 나왔고, 지난달 40대 여성이 올해 첫 확진을 받았다. 인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등에 방문할 계획이 있으면 박쥐, 돼지 등 동물과 접촉을 피하고 오염된 과일이나 대추야자 수액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 강력한 전염병들이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코로나19의 교훈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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