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건설사 블랙리스트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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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근교의 아셰르(Acheres) 하수처리장 현대화 사업은 8억 5000만 유로(1조 4000억 원)짜리 대형 프로젝트다. 하지만 대기업 컨소시엄이 기술과 비용에서 맹점을 노출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부실 시공과 담합, 환경 오염으로 지역 언론과 시민단체의 질타도 잇따랐다. 결국 입찰 5년 만인 2017년 ‘중대한 위법과 부정행위’를 이유로 컨소시엄이 퇴출되고 입찰에서도 배제됐다. 공기 지연과 비용 증가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 전가됐다. 프랑스에서는 이후 ‘공공의 신뢰 훼손’을 엄격히 따지는 퇴출 체계가 강화됐다.

미국은 공익을 침해하는 건설업체가 적발되면 연방정부는 물론 지자체까지 나서 블랙리스트에 올려 공공 사업 수주를 원천 차단한다. 뉴욕시는 지난해 공공 인프라 해체 업체 알바(Alba)를 ‘Debarred and Non-Responsible Entities’(입찰 금지 및 부적격 업체) 목록에 올렸다. 지역 언론과 시민단체가 계약 불이행과 환경·노동 기준 위반 문제를 제기하면 지자체가 현장 조사를 거쳐 철퇴를 내리는 수순이 일반적이다. 뉴욕시 홈페이지에는 알바를 비롯해 수십 곳의 건설사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어 있는데, 이런 제재는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일본도 사익을 추구하며 공익을 침해하는 기업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불이익을 안긴다. 일본 도쿄와 오사카를 자기부상열차로 잇는 리니어 신칸센은 7조 4000억 엔(69조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 사업이다. 소위 ‘빅4’ 건설사들이 싹쓸이 수주한 뒤 뒤탈이 났다. 입찰 담합과 경쟁사 포기 강요가 드러난 것이다. 담합에 의한 공사비 상승과 재입찰에 따른 지연 피해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대기업 건설사들은 국가 조달 사업에서 축출된 것은 물론, 노선이 지나가는 지자체로부터도 입찰 배제 목록에 올려져 큰 타격을 입었다.

가덕신공항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현대건설이 108개월(9년) 연장안으로 어깃장을 놓은 탓에 사업이 1년 이상 지연될 위기다. 국토부의 84개월(7년) 조건에 참여해 놓고 뒤늦게 몽니를 부려 국책 사업에 혼선을 일으킨 것은 명백한 공익 농락이다. 국토부가 법적, 행정적 조치를 검토한다며 시간을 끄는 사이, 현대건설은 벡스코 제3전시장, 고리 1호기 해제 사업에 군침을 흘린다.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행태다. 지역의 공공선이 우롱당했는데 언제까지 정부 조치만 기다릴 건가. 인접 지자체가 연대해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지역 공공 인프라 퇴출을 선언해야 한다. 불의를 방관하면 정의는 질식한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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