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패싱당한 한전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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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기는 석탄, 천연가스,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등을 바탕으로 대규모 발전소에서 주로 생산된다. 이를 생산하는 주체는 민간 발전사와 한국전력공사 산하의 자회사들이다. 한국전력은 오랫동안 전력 공급을 사실상 독점해 왔다. 하지만 2001년 전력거래소(KPX)가 설립되면서 이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전력거래소는 발전사들이 입찰한 전기를 수요와 공급 상황에 따라 가격을 정해 구매하고, 이를 한전에 공급하는 도매시장 역할을 한다. 여기에 더해, 올해 3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대용량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들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거래소에서 전기를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전력 직구 제도는 2001년 도입됐지만, 당시에는 한전의 전기요금이 저렴해 실질적인 활용이 거의 없었다. 근래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전력거래소가 ‘3년 이상 계약 유지’ 등 제도를 손질해 본격 시행에 나선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LG화학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력을 직접 구매하기 시작했다. 산업용 전기 요금이 빠르게 오르면서 기업들 부담이 커진 여파다. 한전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패싱당한 셈이다. 전력 직구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이다.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도매가격은 최근 기준으로 kWh당 평균 125원 정도 된다. 반면 같은 기간 한전이 판매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대략 182원 수준이다. 단순 비교만으로도 30% 정도 싸다. 문제는 전력 직구로 방향을 전환하려는 기업들이 LG화학 외에도 더 있다는 점이다. 전력 직구 기업이 늘면 자칫 한전의 매출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한전의 전체 전기 판매 수입 중 산업용 비중은 약 58%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직구로 이탈할 경우 한전은 고정 수익원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손실을 중소기업이나 일반 가정이 떠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한전은 지난 2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을 38% 올린 데 이어 일반 전기요금도 인상한 바 있다.

기업 입장에서 전력 직구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가격 경쟁력 확보 등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 때문에 이미 미국, 일본 등에서는 유사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일반 가정까지 전력 직구를 허용할 정도다. 다만 한국처럼 전력 시장을 공공 기반으로 운영해 온 국가에서 직구가 전력 시장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자칫 사회 전체가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도 있다. 향후 이 제도가 어떻게 자리 잡을지, 중소기업과 가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한 관찰과 추가적인 제도 보완이 요구된다 하겠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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