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임진왜란 조선 수군 주력 '판옥선' 속도 첫 규명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 당시 해전 이동 경로 통해 밝혀
이순신함대 5박 6일간 시속 6.3km로 항해한 것으로 나와
"추격전 벌어지거나 순풍 만났을 땐 10km/h 이상 됐을 것
현대 여객선과 비교해도 무동력임에도 기동력 상당했을 것"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 상상도. 이순신전략연구소 제공.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함인 ‘판옥선’의 속도는 어느 정도였을까?
판옥선의 구조·제원에 대한 기록이나 외형을 묘사한 그림은 일부 남아있지만 실제 항해 속도를 알 수 있는 사료는 없는 상황에서 당시 함대의 이동 경로와 시간 등을 근거로 판옥선의 속도를 처음으로 규명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1차 출전 항해 거리를 이동 시간으로 나눠 평균 시속을 산출한 연구논문을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발표했다. 이 소장은 ‘난중일기’ ‘임진장초’(壬辰狀草) ‘옥포파왜병장’(玉浦破倭兵狀) 등의 사료를 바탕으로 이순신 장군과 그의 함대가 지나간 항로와 전투 장소, 정박지, 수색지 등을 파악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 함대는 1592년 음력 5월 4일 새벽 2시(축시·丑時)께 여수에서 제1차 출전을 감행했다. 경상도 해역으로 진출한 함대는 5월 7일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에서 승리하고 5월 8일에는 적진포 해전에서 적을 격파했다. 그 후 5월 9일 정오께 여수로 귀환했다. 5박 6일 동안 약 130시간(24시간x5일+10시간)을 이동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5월 4일 여수에서 출발한 함대는 2개 조로 나눠, 제1조는 남해도의 평산포, 곡포, 상주포 등을 수색한 후 미조항에 머물고, 제2조는 곧장 개이도(통영시 산양읍 추도)로 진출하여 수색을 벌인 후 미조항으로 돌아와 1조와 합류했다.
함대는 그날 저녁 소비포(고성군 하일면 춘암리)에 도착해 1박한 뒤 이튿날 다시 출발해 원균의 경상우수군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인 당포(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로 진출했다. 원균이 당포에 나타나지 않아, 다음 날인 6일까지 기다려서야 겨우 합류해 저녁 무렵 거제도 남단의 송미포에 도착하여 1박했다. 5월 7일 송미포를 출발한 연합함대는 그날 정오께 거제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뒀다.
이후 거제도 북단의 영등포(거제시 장목면 구영리)로 이동하여 숙영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오후 4시(신시·申時)께에 척후장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적선 5척이 항행한다는 보고를 받은 이순신 장군은 적을 추격해 마산만으로 들어가 합포 해전에서 승리했다. 그날 밤에 노를 재촉해 창원 남포(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난포리) 앞바다로 와서 진을 치고 하룻밤을 지냈다.
5월 8일 아침 일찍 출발한 함대는 고리량(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구복리와 저도 사이) 일대를 수색한 후 적진포(고성군 거류면 화당리 남촌성 아래)로 가서 적진포 해전에서 승리한 후, 곧장 여수로 귀환해 5월 9일 정오께 전라좌수영에 도착했다.
이순신 함대의 1592년 5월 4~9일 제1차 출전 경로(빨간 선은 출전, 파란 선은 복귀 경로). 이순신전략연구소 제공
이 소장은 이순신 함대가 5박 6일 동안 움직인 경로를 ‘국토정보플랫폼’ 지도를 통해 측정해 본 결과 약 418km에 이른다고 밝혔다. 130시간 동안 418km를 이동했다는 것이다.
다만 130시간 중에서 이순신 함대가 움직이지 않은 시간을 뺐다. 먼저 소비포에서 하룻밤 정박하면서 저녁 나절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약 10시간을 머물렀다. 당포에서는 원균과 그 부하 장수들을 기다린다고 24시간 이상을 보냈다. 이어 거제도 송미포에서 밤을 새우면서 최소 10시간이 경과했을 것으로 봤다. 밤중에 도착한 창원 남포에서도 약 10시간 정도 밤을 새운 것으로 계산했다. 이렇게 네 군데에서 숙영을 하며 머문 시간은 약 54시간이다.
전투를 벌인 시간도 제외했다. 옥포 해전(적선 30여 척)에서 약 2시간, 합포 해전(적선 5척)에서 약 1시간, 적진포 해전(적선 13척)에서 약 2시간 정도 걸렸을 것으로 추정하면 모두 5시간이다.
또 수색작전을 펼치며 지체된 시간도 뺐다. 남해도의 평산포, 곡포, 상주포와 개이도 일대를 수색했고, 적진포해전 직전 고리량 일대를 수색하며 머문 시간도 항진 시간에서 빼야 하는데 이 소장은 이를 5시간 정도로 계산했다.
그래서 함대가 항진하지 않은 시간은 △야간에 정박한 4곳에서의 54시간 △전투 5시간 △수색으로 지체 5시간 등을 합치면 64시간이 된다. 전체 이동 시간인 130시간에서, 실제로 항진하지 않고 머문 64시간을 빼면 이순신 함대가 실제로 움직인 시간은 약 66시간이 된다.
따라서 함대의 전체 이동 거리(418km)를 항진 시간(66시간)으로 나누면 판옥선의 시속은 약 6.3km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소장은 “해전 승리 후 여수로 돌아오는 길에는 노를 젓는 격군들이 지치지 않도록 서행했을 가능성이 높아 실제 속도는 더 높았을 것”이라며 “만약 추격전이 벌어지거나 순풍에 돛을 달고 최대 속도로 노를 젓는다면, 이순신 함대의 판옥선은 10km/h 이상의 속도가 나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진왜란 때 맹활약한 돌격 함선인 거북선은 판옥선의 상체 부분을 개량해서 덮개를 덮은 구조였기 때문에 거북선의 속도도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북선은 이순신 함대의 2차 출전에서 사천 해전 때부터 활용됐다.
현재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를 오가는 대형 여객선의 속도가 43km/h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람이 노를 저어 움직이는 무동력선인 판옥선의 기동력이 상당했음을 이번 논문을 통해 알 수 있다.
한편 2004년 설립된 이순신전략연구소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문헌 및 현장연구, 전적지 답사, 세미나 및 강연, 학술대회 등을 개최해 오고 있는 민간 연구소이다.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