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연대는 가능한가”…부일시네마 ‘딸에 대하여’
‘딸에 대하여’ 포스터. 아토, 찬란 제공
영화를 사랑하는 <부산일보> 독자를 극장으로 초대하는 ‘BNK부산은행과 함께하는 부일시네마’(이하 부일시네마) 시즌2 네 번째 26일 상영회가 열렸다.
이날 오후 7시 부산 중구 신창동 ‘모퉁이극장’에 모인 관객 50여 명은 지난해 평단의 찬사를 받은 독립영화 ‘딸에 대하여(2024)’를 관람했다. 이미랑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영화는 중년 요양보호사가 성소수자인 딸을 서서히 이해하는 과정을 다뤘다. 제36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주인공인 ‘나’(오민애)는 딸(임세미)과 그의 동성 연인(하윤경)과 한 집에서 살게 됐다. 딸이 연인과 사귄 지 7년이나 됐지만, ‘나’는 여전히 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집 안엔 늘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모녀는 종종 날 선 언쟁을 벌인다.
‘딸에 대하여’ 장면. 아토, 찬란 제공
영화는 직관적이고 영리하다. 전형적인 호모포비아 캐릭터인 ‘나’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견을 보여주는 동시에, ‘나’의 모순점을 통해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나’는 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이유는 현실이라는 장벽 때문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보통의 가정’을 꾸려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병원에 있는 인지저하증 노인들처럼 홀로 늙어가는 신세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자꾸 현실에 저항하려는 딸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다그친다. 관객들은 가장으로서 힘겨운 희생까지 감내하는 ‘나’에게 어느 정도 감정이 이입된다. 딸이 이기적이라는 생각마저 들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나’ 역시 딸과 다를 바 없다. 현실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나’가 보살피는 인지저하증 노인의 기본권도 침해한다. 손발을 묶고 강제로 기저귀를 채우는 등 홀대하고 박대한다. 돈도 인력도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런 현실에 마냥 순응하지 않는다. 노동 약자 신세지만 고용주인 병원 측에 할 말은 하는 ‘나’의 모습은 성소수자로서 투쟁하는 딸의 모습과 똑 닮았다. 둘이 싸우는 이유 역시 똑같다. 함께 살기 위해서다.
영화 ‘딸에 대하여’ 장면. 아토, 찬란 제공
분위기의 대비를 활용한 메시지 전달도 인상적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불편함을 유발하는 장면 투성이다. ‘나’는 딸과 그의 연인이 꼴 보기도 싫은데, 어쩌다 같은 집에서 살게 됐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딸의 연인은 관계 개선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나’는 그와 소통할 의지조차 없다. 이 불통과 단절 탓에 모두가 불편하고 찝찝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나’는 점차 둘에게 마음을 연다. 그렇게 소통과 연대가 시작된 이후로 영화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다.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들이 펼쳐진다. 극명한 대비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포용과 연대로 차별을 해소했을 때 평화가 온다는 메시지는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여성 서사를 활용해 주체적 여성과 가부장 탈피라는 메시지도 녹여냈다.
배우들의 명연기는 확실한 관람 포인트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양관식(박보검)의 엄마를 연기해 얼굴을 제대로 알린 배우 오민애의 생활 연기가 인상적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봄날의 햇살’ 최수연 변호사 역을 맡았던 하윤경의 당돌한 눈빛 연기도 흡입력 있다. 인지저하증 노인을 연기한 원로 배우 허진에게선 관록이 묻어 나온다.
상영회 뒤에 관객끼리 감상을 공유하는 시간인 ‘커뮤니티 시네마’가 진행됐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김지연 영화평론가가 모더레이터로 나섰다. 다음은 관객들의 감상평.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는데, 주인공의 번뇌가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마음이 아팠다. 제사 문화와 관련해 남성 중심적인 현실을 꼬집는 장면도 있었는데 공감이 갔다.”
“딸이랑 함께 봐서 더 뜻 깊다. 생판 모르는 어르신과 연대하는 엄마의 삶이 결국 딸의 삶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다”
“쌍둥이 포함해 딸이 넷이다. 마흔 셋에 (남편 없이) 혼자가 되어 딸 넷을 키웠고, 지금은 다들 가정을 이뤄 잘 살고 있다. 우리는 예전에 자식 낳고 살라고 하면 다 수긍하는 세대였는데, 지금은 또 다르다. 자식이 선택한 인생에 대해 엄마가 수긍하고 놓아줄 줄 알아야 한다. 걔들은 걔들 인생이 있다. 부모가 (자녀들을) 좀 놓아주는 연습도 해야 한다.”
“딸하고 같이 온 아빠다. 딸만 셋이고 아내가 요양보호사라 감정을 이입하며 볼 수 있었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만 이용하고 극장은 5년 여 만에 찾았는데, 러닝타임 내내 숨죽이고 봤다. 오랜만에 극장에 오니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이런 영화인 줄 모르고 왔다. 처음엔 내용이 너무 어둡고, 엄마의 삶이 너무 고달프게 느껴졌다. 딸과 그 친구의 관계도 부정적으로 보였는데,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생각하고 염려하던 것과 다르구나’ 싶었다.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게 됐다.”
김 평론가는 “관객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을 한 자녀를 지켜보면서 평소 해보지 못했던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며 “고령화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과 돌봄의 의미를 묻는 시류에 맞는 영화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인데 영화를 신중하게 잘 만들었다. 사각지대에 있는 어떤 사람도 상처 받지 않게 만든 것이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모퉁이극장은 소감을 말한 관객 중 5명을 선정해 랜덤 영화 포스터를 증정했다.
부일시네마는 부산닷컴(busan.com) 문화 이벤트 공간인 ‘해피존플러스’(hzplus.busan.com)에서 관람을 신청한다. 참가자를 추첨해 입장권(1인 2장)을 준다.
오는 9월 상영작은 따뜻한 힐링영화 ‘새벽의 모든’(2024)이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