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25] ‘부산 어워드’ 트로피 1호 주인공은 누구?…14편의 아시아 영화 수작들 ‘치열한 경합’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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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부문

영화 ‘루오무의 황혼’ 스틸컷. BIFF 제공 영화 ‘루오무의 황혼’ 스틸컷. BIFF 제공

거장부터 신인까지 고루 포진

대상 수상작은 폐막작 상영

대만 배우 서기 감독 데뷔작 등

다양한 장르 화제작들의 향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변화라면 경쟁부문 신설을 들 수 있다. 서른 번째 축제를 맞는 BIFF가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30년을 내다보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한 결과 가장 앞세운 게 바로 경쟁부문의 도입이다. 다가올 30년의 출발점에서 내보이는 새 프로젝트인 만큼 준비를 많이 했다. 베를린과 칸, 베니스까지 유럽의 전통 있는 영화제에 버금갈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BIFF의 경쟁부문 후보작 열네 편을 소개한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공인된 거장 작품부터 데뷔 감독 작품에 이르기까지 동시대 아시아 영화의 수작들을 모셨다”고 자신했다. 자, 이제 ‘부산 어워드’의 1호 주인공이 될 후보들을 만나보자. 수상작은 오는 26일 폐막식장에서 발표되며, 대상 수상작은 폐막작으로 상영된다. 14편 중 10편이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아시아 거장들의 영화

■장률 ‘루오무의 황혼’

칸영화제 비평가주간과 로카르노영화제·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이력을 자랑하는 장률 감독의 신작이다. 중국 소도시 루오무의 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바이. 3년 전에 받은 옛 남자 친구 왕의 엽서 한 장을 들고 마을을 산책하며 그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영화는 바이가 며칠간 머문 루오무의 일상을 따뜻하면서도 때론 유머러스하게 그린다. 박선영 프로그래머는 “테크노 리듬으로 편곡된 ‘아리랑’에 맞춰 등장인물들이 막춤을 추는 장면은 장률 영화의 엇박자 리듬이 담아내는 따뜻한 유머와 위로”라고 소개했다.

■비간 ‘광야시대’

중국의 신진 거장 비간 감독의 SF 판타지물로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다. 여러 에피소드와 시간대를 거치면서 꿈과 환상과 환영의 이미지로 20세기 100년의 시간대를 통과하는 작품. 꿈을 통해 SF, 표현주의, 누아르, 슬랩스틱 코미디, 스릴러 등 다양한 영화 장르들을 변주하고 오마주한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20세기 영화에 보내는 감독의 연서”라면서 “영화와 극장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뜨거운 감동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배우로 나오는 서기의 첫 연출작도 경쟁 부문에 나란히 초청됐다.

영화 ‘왼손잡이 소녀’ 스틸컷. BIFF 제공 영화 ‘왼손잡이 소녀’ 스틸컷. BIFF 제공

■미야케 쇼 ‘여행과 나날’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2) ‘새벽의 모든’(2024) 등으로 한국에서도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미야케 쇼의 신작. 일본의 든든한 중견 배우 쓰쓰미 신이치와 신인 가와이 유미, 그리고 한국의 심은경이 주연을 맡았다.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 〈해변의 서경〉과 〈혼야라동의 벤상〉 두 편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서로 다른 계절에 만난 낯선 이들의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엮었다. 올해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 수상작. 박가언 수석 프로그래머는 “심은경과 쓰쓰미의 담백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연기가 돋보인다”고 평했다.

■비묵티 자야순다라 ‘스파이 스타’

‘버려진 땅’(2005)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스리랑카 영화를 세계에 알린 감독의 신작. 우주에서 몇 년을 지내다 막 지구로 돌아온 젊은 생명공학자 아난디가 바이러스 창궐로 격리시설에 머물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로, 인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묵묵히 그려낸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를 그린 판타지이기도 하다. 신비로운 초혼 의식,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거북이의 산보 등을 교차시켜 SF 장르를 비틀면서 아름답고 신비한 영화적 체험으로 초대한다.

최신의 화제작

■쩌우스칭 ‘왼손잡이 소녀’

‘아노라’(2024)로 올해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션 베이커 감독이 공동 각본, 편집,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 션 베이커와 ‘테이크 아웃’(2004)을 공동 연출했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타이베이 야시장에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세 모녀의 불안하고도 위태로운 일상을 사실적이면서도 때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핸드헬드 촬영, 선명한 색감, 속도감 있는 편집 등을 통해 생동감 넘치는 타이베이의 야경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막내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와 인물들이 매력적이다.

■서기 ‘소녀’

대만을 대표하는 스타 배우 서기의 감독 데뷔작.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알코올 중독자 아빠, 자신에게만 유독 가혹한 미용사 엄마, 그리고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동생과 살고 있는 소녀 샤오리의 일상과 일탈을 감성적인 색감과 미장센으로 좇는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와 함께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예사롭지 않은 신인 감독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거장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만들었던 미적 감각과 세계관이 패기 있는 신인에 의해서 새롭게 탄생했다”고 평가했다.

수지 주연의 ‘실연당한 사람들…’

한창록 감독 충격적 서사 ‘충충충’

한국 영화 4편도 후보에 올라

이란·타지키스탄 배경 작품 눈길

■임선애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첫 장편 연출작 ‘69세’(2020)로 BIFF 뉴 커런츠 부문 관객상을 수상하고, 두 번째 작품 ‘세기말의 사랑’(2024)으로 다시 한번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연인과 헤어진 이들이 모여 조찬모임을 함께하며 실연 기념품을 교환하고 이별 영화를 같이 보며 상실과 결핍의 퍼즐을 찾아가는 이야기. 수지, 이진욱, 유지태, 금새록 등 검증받은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와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실패한 이들의 심폐를 소생시키는 유려한 대중영화를 탄생시켰다는 평가다. 백영옥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이 원작.

■나카타 고토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

‘러브레터’(1999)의 이와이 슌지 조감독 출신인 감독의 신작. 범죄와 연루된 세 인물이 펼친 사흘간의 도주극을 각자의 시점으로 그려낸 미스터리 서스펜스물이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7), 넷플릭스 시리즈 ‘유유백서’(2023)에서 주연을 맡았던 기타무라 타쿠미와 아야노 고가 다시 호흡을 맞추고 신예 하타시 유타가 가세했다.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더해져 청춘 성장담을 완성했다는 평가다. 박가언 수석 프로그래머는 “폭력이 현실에 깊숙이 침투한 대도시를 냉정하게 비추는 자화상”으로 소개했다.

아트하우스의 계보를 잇는 작품

영화 ‘허락되지 않은’ 스틸컷. BIFF 제공 영화 ‘허락되지 않은’ 스틸컷. BIFF 제공

■하산 나제르 ‘허락되지 않은’

“왜 배우가 되고 싶은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자유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망명 중인 이란 출신 감독이 새 작품 촬영을 위해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한다. 그는 다음 세대의 목소리를 기록하기로 결심하고 사막 변두리에서 아이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 단출한 질문을 던지며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린다. 이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현실 인식론이자 동시에 영화에 관한 영화이다. ‘길 위의 영화’로 불리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방법론으로 현실과 영화 사이에 풍요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저벨 칼란다 ‘또 다른 탄생’

‘타지키스탄에서 도착한 한 편의 시와 같은 아름다운 영화.’(박선영 프로그래머)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돌아오지 않은 아들을 그리며 간신히 삶을 잇는 할아버지, 외로운 삶 속에서 시들어 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갖게 되는 삶과 인생에 관한 질문을 아름다운 대사와 영상으로 그려낸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타지키스탄의 계곡을 배경으로, 군더더기 없이 설계된 조명과 정지된 이미지들 사이의 섬세한 긴장감이 영화의 시적 정서를 한층 배가시킨다는 평가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이제한 ‘다른 이름으로’

오랜 기간 홍상수 감독과 함께 일했던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 이 감독은 전작 ‘소피의 세계’(2022)와 ‘환희의 얼굴’(2024)이 BIFF에 연속으로 초청되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작품은 폐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려는 무명 감독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감독은 ‘영화가 뭐길래’라고 책망하는 아내 몰래 작업을 진행하지만, 영화는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시나리오만 남은 상황으로 이어진다. 전작을 뛰어넘는 미학과 과감한 전개가 감동에 닿게 한다.

올해의 빛나는 데뷔작

영화 ‘고양이를 놓아줘’ 스틸컷. BIFF 제공 영화 ‘고양이를 놓아줘’ 스틸컷. BIFF 제공

■시가야 다이스케 ‘고양이를 놓아줘’

2021년 단편 ‘창문’으로 BIFF 와이드 앵글에 초청됐던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성공한 사진작가 아내와 불편한 감정으로 지내고 있는 음악가 모리. 한때 연인이었던 아사코를 우연히 재회하고 안부를 나누는 과정에서, 각자 더듬은 기억 속 서로 다른 과거를 마주한다. 과거의 미련과 향수, 사랑이 불러오는 감정과 파고, 시간에 대한 상대적 감각을 신인답지 않게 연출한 수작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이가라시 고헤이를 잇는 또 한 명의 일본 감독이 나타났다.

■한창록 ‘충충충’

“어쩌면 이 작품이 올해 영화제에서 논쟁과 논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수수께끼 같은 제목은 영화 중간에 차례로 등장하는 세 개의 타이틀 ‘충(衝)동’ ‘충(衝)돌’ ‘충(衝)격’의 앞 세 글자를 하나로 모은 것이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고전적인 인물들이 출연하는 가운데 박진감 있는 서사가 전개되고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자유자재로 전개된다. 의도적으로 장치된 유치하고 거칠고 현란한 이미지들이 영화 내내 ‘날뛰’고 있다. 제목만큼이나 기이하고 도발적인 활기로 가득 찬 괴물 신인의 괴상한 데뷔작.

■유재인 ‘지우러 가는 길’

담임 선생님과 비밀 연애로 임신을 한 여고생이 꽁무니를 뺀 담임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아이를 지우기로 하고, 이 불온한 여정에 룸메이트가 동행한다. 다만, 이 영화는 순수하고 낭만적인 학원물이나 윤리극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난장 속에서도 유머라는 숨구멍과 우정과 동행이라는 출구를 잃지 않고 마침내 결론에 이르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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