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열린 땅 카자흐스탄 [비즈앤피플]
카자흐스탄 현장에서 본 한국의 기회
‘고려인’은 성공의 아이콘
‘코리아’는 프리미엄 인식
한류 선도 고려인 3세
CU 매장 현지 안착시켜
현지 은행 개설한 BNK
부울경 기업 ‘가교’ 기대
알마티 시장에 진열돼 있는 한국 식품.
알마티에서 열린 BNK커머셜뱅크 본점 개소식.
“안녕하세요 CU입니다.”
지난달 27일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아르바트에 있는 CU 매장에 들어서자 반가운 한국말이 들려왔다.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된 제품 대부분이 한국 제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 CU 매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K드라마, K팝을 필두로 K푸드, K뷰티까지 인기를 끌며 한류가 카자흐스탄 젊은 층에 깊숙히 파고들고 있다.
이처럼 한국 제품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는 카자흐스탄 내에서 고려인이 차지하는 위상도 영향이 컸다. 카자흐스탄을 구성하는 130여 개 민족 중 고려인은 0.6% 정도밖에 안 되지만 매년 포브스지가 발표하는 카자흐스탄 부자 50인 중 15~20%가량이 고려인이다. 올해 발표된 부자 1위도 고려인이다.
‘중앙아시아의 심장’으로 불리는 카자흐스탄에서 BNK금융그룹이 은행업 설립인가를 받고 본격적인 중앙아시아 시장 진출에 나섰다. 고려인과 한류라는 든든한 배경 속, BNK커머셜뱅크(현지 법인명)가 카자흐스탄 경제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안드레이 안토노비치 신 신라인 회장.
■ 존경받는 ‘고려인’, 성공의 아이콘
카자흐스탄에서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고려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한 카자흐스탄인은 “중학교 때 공부도 열심히 하고 뭐든 열심히 해 친구들이 나를 고려인이라 불렀다”면서 “이후 진짜 고려인처럼 돼버려 한국에서 4년간 공부를 하고 왔고 한국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인은 12만 명가량밖에 되지 않지만 카자흐스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높다. 올해 포브스지가 발표한 카자흐스탄 부자 50명 중 1위가 비야체슬라프 김 카스피 은행(Kaspi Bank) 회장이다. 무려 71억 달러의 재산을 갖고 있다. 카스피 은행은 카자흐스탄 국민 대부분이 이용하는 은행이다. 은행 사이트에서 쿠팡처럼 제품 구입도 할 수 있고, 회사도 만들 수 있고, 세금도 낼 수 있다. 카작무스라는 광물자원회사를 소유한 블라디미르 김도 올해 3위에 올랐다. 매년 포브스지 발표 카자흐스탄 부자 50위 명단에는 고려인이 7~12명 들어간다.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러시아 극동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은 황무지에 땅굴을 파서 생활하며 카자흐스탄에 정착했다. 당장 먹고 입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교육기관을 세웠을 정도로 자녀 교육에 열성을 보였고, 근면함과 책임감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 위치까지 올랐다.
알마티 고려문화원 김상욱 원장은 “카자흐스탄과 한국과의 외교 관계가 수립되고 좋은 관계가 유지되면서 고려인들이 자원 개발 등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됐다”면서 “특히 고려인들은 소련 해체 후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 넘어가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고, 카자흐스탄에서는 나라가 이 정도까지 잘 살게 된 데에 고려인들의 역할이 컸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고려인들을 존경하고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아르바트에 있는 CU 매장. 한국 매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 한류, 카자흐 경제를 파고들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한국 문화를 접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산 제품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K푸드와 K뷰티의 인기로 대형마트 갈마트(Galmart)와 스몰(Small)의 진열대에서도 한국 식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지인들에게 ‘코리아’는 그 자체로 하나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되며, 유명하지 않은 중소기업 제품이라도 ‘Made in Korea’만 붙어 있으면 높은 판매고를 올릴 수 있는 브랜드가 됐다. 김 원장은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는 코리아 자체가 브랜드이고, 중소기업들이 진출하면 이익률이 높을 것”이라면서 “특히 최근에는 한국 화장품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도 한국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알마티 시내 도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자동차다.
실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실시한 ‘2025 해외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국민의 84.1%가 최근 4년간 한국산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류 열풍의 최전선에는 고려인 3세가 운영하는 중앙아시아 최대 아이스크림 제조사인 Shin-Line(신라인 그룹)이 있다. 신라인은 한국 편의점 CU의 현지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자로서, 카자흐스탄에 CU 매장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카자흐스탄에 CU 편의점이 들어온 지 1년여 만에 모두 42개 매장이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1200개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알마티 아스타나 광장 앞 CU에서 만난 대학생 도쿠타르 아야잔 씨는 “여기 오면 한국 분위기가 느껴져서 자주 온다”면서 “친구들과 라면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한국 화장품도 산다”고 말했다. 신라인에 따르면, 현재 CU에서 판매되는 한국 제품의 비중은 30% 정도지만 매출은 50%를 넘는다.
안드레이 안토노비치 신 신라인 회장은 “한국 제품의 인기가 높지만 문제는 물류”라면서 “중국 청도에서 한 달을 기다렸다 여기 오기까지 2~3개월이 걸린다. 특히 식품류는 물류 시간이 길어지는 건 문제다. 식품 클러스터를 조성해 한국 식품을 현지에서 제조하고 유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유명 식품 제조 기업이 현재 입주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현재 한국에서 참치를 수입해 참치김밥을 만들고 있는데, 부산도 해산물에 특화된 식품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언제든 협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 BNK금융에 거는 기대
고려인 최유리 회장이 이끄는 카스피안 그룹은 알마티시 북쪽에 인천시와 비슷한 면적의 대규모 신도시 알라타우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경제특구 지정과 함께 2029년까지 1500억 달러의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BNK커머셜뱅크(BNK 카자흐 은행) 개소식에서 마지나 아빌카시모바 금융감독원장은 "카자흐스탄에서 외국 은행이 은행업 인가를 받고 설립된 건 16년 만에 처음이고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인가를 받은 최초의 은행"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아빌카시모바 원장은 "카자흐스탄과 한국과의 교역이 확대되고 있고 BNK가 카자흐스탄 경제에서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김성현 BNK커머셜뱅크 법인장은 "카자흐 현지에서의 요구를 파악해 부울경 기업들과의 가교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마티(카자흐스탄)/글·사진=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