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다운 집을 찾아 보자
■집, 다음 집 /상현
어릴 때부터 스무 곳 넘게 이사
시간 궤적이 그려낸 집 연대기
집다운 집이란 무엇인지 고민
프리랜서 건축설계사인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 20번 넘게 이사하며 집이라는 공간을 탐구하는 책을 냈다. 고래인 제공
작가가 직접 그린 어린 시절 꿈꾸던 놀이동산을 닮은 집. 고래인 제공
평범해보이는 집도 안으로 들어가면 보물상자같은 공간이 나오기도 한다. 고래인 제공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잠자고 쉬는 장소? 혹은 재테크 도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럼 좋은 집은 무엇일까? 집 살 때 고려하는 조건을 보자. 역세권, 학군, 집값 상승 가능성, 주변 자연환경, 가성비, 마트 접근성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이 충족되면 정말 평생 살고 싶은 영원한 집이 될 수 있을까.
현재 프리랜서 건축설계사로 일하는 저자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스무 곳이 넘는 집을 옮겨 다녔다. 그 기억 속에 집이라는 공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의 내 방, 이후 첫 독립, 첫 취업 등 유년기와 청춘의 각 단계에서 우리는 나의 방, 내 집이라고 불리는 공간들을 마주했다.
저자는 문득 나와 그 공간이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졌다. 사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대차 계약으로 잠깐 빌린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음과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집들과 분명히 관계가 있었다. 계단이 하나만 있다면 그저 턱일 뿐, 징검다리가 하나만 있다면 그저 돌일 뿐, 기차도 한 칸만 있다면 그저 차일 뿐이다. 잠깐씩 살았던 그 집들이 내 집으로 가는 과정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그간의 집과 나 사이의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책의 제목인 <집, 다음 집>은 마치 ‘집다운 집’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느껴진다.
1부는 처음으로 자신의 방을 가지게 되었을 때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나의 방이 생겨 좋기보다 오히려 어색했다고 한다. 항상 퇴근이 늦은 부모를 홀로 기다리는 아이였기에 다시 자기만의 공간에 고립되기보다 차라리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거나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대화하는 것이 좋았다. 스무 살 자취를 시작하며 작은 상자 같은 원룸의 생활이 시작된다. 정이 들지 않았던 그 공간을 바꾸기 위해 직접 전등을 만들고 손품을 들여 변화를 시도했다. 손때 묻은 집은 특별한 곳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1부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좋은 집은 다음 집을 꿈꾸고 상상하게 만드는 집’이라고 정의한다. 마치 점심밥을 먹으며, 저녁에 뭐 먹을지 생각하는 것처럼,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자신에게 다음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집이 자기다운 집이라는 말이다.
2부 고요한 집과 3부 솔직한 집은 그동안 살았던 집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그 집을 변화시킨 사례도 나온다. 다닥다닥 붙은 집은 매서운 도시의 겨울에 온기를 나누는 생존 방법이 되고, 늪에 빠지는 것처럼 집에서 나오지 못하던 경험도 있다. 평온하고 편한 공간은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게 만들기도 한다.
오래된 집의 낡은 벽은 세월을 받아내며 생긴 흔적이라 생각하니 묘한 안정감이 생겼고, 아무것도 없는 벽에 엽서, 사진, 영화 포스터, 편지 등을 붙여 마치 어디로든 연결되는 작은 창문들로 만든다. 행복했던 여행지, 감동적인 순간으로 데려다주는 마법의 장치가 될 수 있다.
마지막 4부 오롯한 집은 그동안 지낸 집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라는 사람과 나다운 집을 찾아간다. 그 어떤 안식처보다 온전한 집은 그 공간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주체적인 시선과 태도였다. 갖추어진 조건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좋은 집을 일구어내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도 변함없이 우리를 지켜줄 자산이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견고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집은 소설과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어떤 인물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서사를 이루는지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 되듯, 집도 그 속에 담기는 사람과 놓일 땅과 짜임새가 다른 한, 무한히 달라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각각의 이야기를 담은 유일한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집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저자는 자신이 어떤 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모든 것을 잘 담아주는 집 그 자체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런 집에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라는 저자의 말에 따뜻함이 가득하다. 상현 글·그림/고래인/320쪽/2만 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