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하늘에 닿은 도서관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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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전 중국 황하에 용의 머리와 말의 몸통을 가진 용마라는 동물이 공중을 맴돌고 있었다. 이에 놀란 백성들이 당시 왕이었던 복희에게 사실을 고하자 복희는 이 동물의 등에 새겨진 그림을 보고 하늘의 메시지를 파악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주역의 근원이 되는 선천 팔괘였다. 용마의 등에 그려진 그림은 황하의 이름을 따서 하도(河圖)로 불렸다.

그로부터 약 1000년 뒤 중국 하나라에 9년간 대홍수가 발생하던 중 낙수라는 곳에 신비로운 글이 새겨진 거북이가 나타났다. 홍수 때문에 치수사업에 치중하던 당시 우왕은 이 글이 하늘의 뜻이라 여겨 후세에 전했고 이는 주나라 문왕에 이르러 주역의 또 다른 근원인 후천 팔괘로 발전한다. 거북의 등에 새겨진 글은 낙수의 이름을 따 낙서(洛書)로 일컬어졌다.

수천 년의 동양 역사를 거슬러 올라야 접할 수 있는 이 하도와 낙서가 바로 도서관(圖書館)의 명칭 유래다. 간체와 약자의 사용만 차이가 있을 뿐 도서관의 이름은 한자 문화권인 한중일에서 모두 동일하다. 하늘의 뜻이 담긴 그림과 글에 닿은 곳이라 여길 정도로 도서관을 중히 여긴 역사적 뿌리가 동양을 관통해 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영미권에서 도서관을 일컫는 library는 나무껍질을 일컫는 라틴어 liber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림과 글이라는 내용 측면을 중시한 동양과는 달리 책을 만드는 재질에 더 초점을 맞춘 점이 차이가 난다. 유럽에서 주로 사용하는 Bibliothek(독일), Bibliotheque(프랑스) 등은 그리스어 βιβλιοθηκη(책+상자)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나 물성의 보관에 초점을 맞춘 이름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인기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도서관의 존재를 인류만이 가진 가장 독특한 특징이라며 과거의 기억을 모아서 미래에 전달하는 곳으로서 상상력의 상징적 장소라 규정했다. 그림과 글이라는 콘텐츠를 중히 여긴 동양이나 책의 물성과 그 보관에 주력한 서양이나 기억 유산을 면면히 이으려 노력했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

최근 〈부산일보〉 보도를 통해 부산지역 공공 도서관의 수요 공급 불일치 실태가 드러나면서 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기록매체인 종이를 물성으로 해 온 기존 도서관의 역할을 넘어 4차산업 시대를 맞아 도서관이 어떻게 진화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까지 본격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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