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학 공모전-중등부 해양수필 최우수상] 이십 피트의 세계를 묶는 매듭 / 김단아
- 아버지의 쇠막대와 나의 운동화 -
현관문을 열면 훅, 하고 폐부 깊숙이 끼쳐 오는 냄새가 있다. 그것은 비 오는 날 젖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비릿함이나, 횟집 수족관 앞을 지날 때 맡던 물냄새와는 결이 다르다. 한여름 땡볕에 달궈진 거대한 철판이 급작스런 소나기를 맞았을 때 피어오르는, 씁쓸하고도 무거운 녹 냄새. 아니, 그보다는 바다의 짠내와 쇠가 깎여나갈 때 생기는 가루, 그리고 오래된 땀이 엉겨 붙어 발효된 고단한 삶의 냄새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 냄새의 진원지는 신발장 가장 구석,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아버지의 안전화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습관처럼 그 신발을 발끝으로 툭 밀어 안쪽으로 숨긴다. 뒤꿈치가 다 닳아 뭉개지고, 앞코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기름때가 눌러붙어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흉물스러운 가죽 덩어리. 흙먼지가 잔뜩 낀 밑창은 마치 갯벌을 그대로 밟고 온 것처럼 지저분하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 나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마다 그 신발이, 아니 그 신발이 뿜어내는 정직한 노동의 악취가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다. 현관에 들어선 친구가 코를 킁킁거리며 "어? 너네 집에서 무슨 쇠 냄새 같은 거 안 나?"라고 물을 때면, 나는 얼굴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방향제 스프레이를 허공에 뿌려대곤 했다.
"아, 이거? 아빠가 낚시 좋아하셔서 그래. 바다 냄새야."
거짓말이었다. 아버지는 낚싯대를 잡아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잡는 것은 미끈거리는 물고기가 아니라, 거칠고 차가운 쇠몽둥이였다. 아버지는 바다에서 일한다. 하지만 내게 그 바다는 에메랄드빛 낭만이 넘실거리는 휴양지가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를 집어삼켰다가 파김치가 되어 뱉어내는, 거대하고 시커먼 공장일 뿐이었다.
학기 초마다 제출하는 가정환경조사서 부모님 직업란 앞에서 나는 늘 볼펜 똥을 묻히며 망설였다. '항만 근로자'라고 적었다가 지우고, '현장직'이라 썼다가 지우개 가루를 털어내며 다시 지웠다. 결국 뭉툭해진 연필로 고민 끝에 적어 낸 단어는 '회사원'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항만 용역 회사에 소속되어 있고, 매달 월급을 받으니까. 하지만 그 매끄러운 단어는 아버지의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을, 손톱 밑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낀 검은 기름을, 그리고 등 뒤에 핀 하얀 소금꽃을 설명해주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의 노동을 '회사원'이라는 납작한 활자 속에 가두고 철저히 외면했다.
지난달, 학교에서 부산항 북항으로 '해양 물류 현장 체험 학습'을 가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아니, 어쩌면 10대라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부린 묘한 심술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매일 새벽 별을 보고 나가서 달을 보고 들어오는 그곳, 온몸에 파스 냄새를 묻혀오는 그곳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곳인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버스가 광안대교를 지나 부산항대교의 높은 주탑을 넘어설 때,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내가 알던 바다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곡선이 허락되지 않는 압도적인 '직선'의 세계였다. 해운대 백사장의 부드러운 모래사장이나 송정 바다의 서퍼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붉은색 갠트리 크레인들이 신화 속 거인처럼 도열해 있었고, 레고 블록을 쌓아 올린 듯 오차 없이 들어선 컨테이너 장벽들은 바다를 가로막은 거대한 성채 같았다.
"우와, 저게 다 뭐야? 진짜 크다.“
아이들이 창문에 매달려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거대함이 주는 위압감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자, 저기가 바로 감만부두다. 우리가 쓰는 물건들이 다 저기로 들어오고 나가는기라. 너거 아버지가 일하시는 데가 저쯤일 끼다.“
인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창문에 이마를 박고 밖을 내다봤다. 8월의 태양은 자비가 없었다. 아스팔트 위로 지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시야를 흐릿하게 뭉갰다. 그 숨 막히는 열기 속에서, 거대한 크레인이 기계적인 쇳소리를 지르며 이십 피트짜리 철제 상자를 허공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쿵, 콰광. 끼이익.
육중한 쇳덩이가 바닥에 내려앉는 소리, 쇠와 쇠가 부딪쳐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버스 안까지 진동으로 전해졌다.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지만 내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 살벌한 굉음과 거대한 쇳덩이들의 춤사위 사이로, 아주 작고 위태로운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이었다.
안전모를 쓰고 형광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 그들은 집채만 한 컨테이너가 머리 위를 오가는데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밑으로 들어가 굵직한 쇠막대를 휘두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이빨 사이를 오가는 벌새처럼, 그들은 위험천만한 틈새를 누비고 있었다.
"저게 바로 '고박 작업'이라는 거다. 배가 파도에 흔들려도 컨테이너가 안 쓰러지게 꽉 묶는 거지. 저거 안 하면 배 뒤집어진다."
선생님의 설명이 귀에 웅웅거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쇠막대. 아버지가 가끔 술에 취해 "이기 내 밥줄이고 니 밥줄이다"라며 허공에 휘두르는 시늉을 하던 그 도구, 턴버클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단순히 컨테이너 문을 열고 닫거나, 지게차를 운전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 미끄러운 철판 위에서, 오직 두 다리와 쇠막대 하나에 의지해 바다와 싸우고 있었다. 수만 톤의 화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거친 바다라는 불확실한 자연과 인간이 만든 문명을 잇기 위해 온몸으로 매듭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망원경으로 현장을 보던 친구가 소리쳤다. "야, 저 사람 봐. 저 무거운 걸 혼자 돌려. 와, 진짜 힘들겠다."
친구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아파트 3층 높이로 쌓인 컨테이너 난간에 한 남자가 매달려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구부정한 등, 땀에 젖어 짙어진 회색 작업복, 그리고 익숙한 몸짓.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그늘 한 점 없는 허공에서,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워 보이는 쇠줄을 당기고 있었다.
순간, 뱃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부끄러움이기도 했고, 충격이기도 했으며, 알 수 없는 미안함이기도 했다.
나는 불과 며칠 전, 해외 직구로 산 한정판 운동화가 늦게 도착한다며 택배 조회 앱을 수십 번씩 새로고침 했었다. "요즘 배송은 왜 이렇게 느려 터진 거야? 내 돈 내고 내가 사는데 왜 기다려야 해?" 짜증을 내며 방바닥을 구르고, 엄마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했었다.
내 발에 꼭 맞는 그 하얀 나이키 운동화가 태평양을 건너 내 방 문턱을 넘기까지, 누군가는 저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등짝이 타들어가도록 쇠줄을 당겨야 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아니,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내 책상 위의 스탠드, 주방의 열대 과일, 심지어 내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의 작은 부품 하나까지.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저절로 순간 이동을 하는 게 아니었다. 20피트, 40피트짜리 철제 상자에 담겨, 아버지 같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묶이고 풀리며 이동하는 것이었다. 내가 누리는 편리함의 뒷면에는,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이면에는 아버지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마찰음과 거친 숨소리가 숨어 있었다.
갑자기 눈앞의 풍경이 흐릿해졌다. 아지랑이 때문이 아니었다. 거대한 크레인 아래, 홀로 버티고 서 있을 아버지의 등이 자꾸만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휘청거리는 그 고독한 사투를 나는 '회사원'이라는 차가운 단어로 지워버리려 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흔들리는 컨테이너와 아버지의 쇠막대뿐이었다.
그날 저녁, 현관문이 열리는 도어락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모래알처럼 갈라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어폰을 꽂은 채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겠지만, 나는 주방으로 나가 물을 따랐다. 식탁에 앉은 아버지의 어깨 위로 형광등 불빛이 창백하게 내려앉았다. 낡은 작업복 등판에는 하얀 얼룩이 지도처럼 그려져 있었다. 엄마는 세제가 덜 헹궈진 거라며 투덜대곤 했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것은 세제 자국이 아니다. 부두의 거센 해풍이 증발시키고 남은 바다의 소금기, 그리고 가족을 지탱하기 위해 아버지가 흘린 땀이 말라붙은 결정체였다.
세상에서 가장 짜고, 가장 고된 꽃. 소금꽃이었다.
아버지는 묵묵히 숟가락을 들었다. 밥을 씹는 볼이 움푹 패어 있었다. 젓가락질을 하는 손마디는 옹이 박힌 늙은 나무뿌리처럼 굵고 거칠었다. 손톱 밑에는 아무리 솔로 문질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기름때가 문신처럼 박혀 있었다. 예전 같으면 밥맛 떨어진다며 외면했을 그 손이, 오늘따라 거센 파도에도 끄떡없는 단단한 닻처럼 보였다.
"아빠."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아버지가 숟가락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흰자위가 붉게 충혈된 눈이었다.
"……오늘, 북항에 다녀왔어요. 학교 현장 학습으로요." "그래? 덥더나." "네, 엄청요. 서 있기도 힘들던데요. 그리고… 엄청 시끄럽던데요. 쇠 부딪치는 소리가."
아버지는 피식, 마른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바다가 원래 요란하다. 그래도 그 쇳소리가 멈추면 나라 경제가 멈추는 기라. 시끄러워도 참아야지, 우쩌겠노. 그게 아빠 일인데."
무심하게 툭 던지는 그 말속에서 쇳소리가 났다. 핑, 하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밥을 입에 넣었다. 밥알이 모래알처럼 까끌까끌하게 씹혔다. 아버지는 자신이 묶는 것이 단순한 화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심장을 뛰게 하는 핏줄을 잇고 계셨던 것이다. 그 핏줄 끝에 내가 있고, 엄마가 있고, 우리가 있었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소파에 기대어 코를 골며 잠시 눈을 붙인 사이, 나는 조용히 베란다로 나갔다. 빨래 건조대에 널린 아버지의 낡은 여벌 작업복을 걷었다. 햇볕에 바짝 말라 뻣뻣하게 굳은 등판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거칠었다. 마치 사포 같았다.
나는 다리미를 꺼내 코드를 꽂았다. 붉은 불이 들어오고 다리미가 달궈지기를 기다렸다.
치이익.
뜨거운 김이 오르자 작업복에서 다시 그 냄새가 났다. 씁쓸한 녹 냄새, 그리고 짭조름한 바다 냄새. 하지만 더 이상 코를 막거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 냄새는 더럽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치열한 삶의 현장을 온몸으로 지켜낸 장수의 향기이자, 거친 파도와 맞서 이겨낸 승리의 냄새였다.
나는 주름진 소매를, 구겨진 깃을 정성껏 다림질했다. 내일 아버지가 다시 저 거친 철의 바다로 나갈 때, 조금이라도 더 빳빳하고 당당한 갑옷을 입고 나갈 수 있도록, 내 서툰 손길이나마 보태고 싶었다. 다리미가 지나간 자리가 반듯하게 펴졌다. 내 마음속에 구겨져 있던 아버지에 대한 오해도, 부끄러움도 함께 펴지는 것 같았다.
다림질을 마친 옷을 옷걸이에 걸며 생각했다. 아버지는 내일도, 모레도 저 무거운 안전화를 신고 20피트의 세계를 묶으러 가실 것이다. 갠트리 크레인이 춤추고 거대한 트레일러가 질주하는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물건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단단한 매듭을 지으러 가실 것이다.
나는 현관으로 나가 구석에 처박혀 있던 아버지의 안전화를 꺼냈다. 물티슈를 뽑아 앞코에 묻은 기름때를 꼼꼼히 닦아내고, 꺾어 신어 구겨진 뒤축을 손가락을 넣어 반듯하게 폈다. 그리고 내 하얀 나이키 운동화 옆에 나란히, 아주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어둠 속에서도 아버지의 신발은 묵묵히 빛나고 있었다. 마치 밤바다를 지키는 항구의 등대처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거친 철의 바다를 건너온 저 20피트 상자 안에는, 단순히 비싼 물건이나 맛있는 과일이 들어있는 게 아니다. 그 안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흘린 아버지의 땀방울과, 거친 숨소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그 묵직한 숨결이 멈추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에 올라탄 나 또한, 아버지라는 단단한 닻을 믿고 흔들림 없이 내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바다는 이제 더 이상 푸른색 물감이 아니다. 아버지의 등 뒤에서 하얗게 피어나는 저 숭고한 소금꽃, 그 짠 내 나는 사랑이 흐르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