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 부담에 치료 망설이는 미등록 이주아동, 부산엔 지원 조례도 없어
건강보험 없어 병원비 부담 커
부산시 지원책·지원 조례 없어
지원 나선 다른 지자체와 비교
“긴급상황 땐 미등록도 지원해야”
이주민 지원단체들과 부산시의회는 14일 ‘이주아동 건강권 토론회’를 열고 건강권 사각지대 이주아동을 위한 지역사회의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사)이주민과함께 제공
“지금 가장 바라는 건 아들이 병원비 걱정 없이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는 것, 그 하나입니다.”
부산에 사는 베트남 이주 여성 A(44) 씨는 지난해 6월 아들 B(5) 군이 언어발달 지연과 주의 집중력 저하, 상황 판단·대처 능력 부족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위해선 병원에 지속적으로 가야하지만 미등록 이주 아동인 B 군에게는 건강보험이 없다. 병원에 한 번 방문할 때마다 병원비는 5만 원을 훌쩍 넘는다. 한국인과 결혼했으나 별거를 선택한 후 베트남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B 군을 낳은 A 씨는 그마저 본국으로 돌아간 후 혼자 B 군을 키운다. 노래방 청소와 식당 일을 하며 매일 일하지만 월 250만 원인 월급으로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출생 등록을 하지 않은 ‘미등록 이주 아동’이 건강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비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기에 아파도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타 지자체는 지원 근거가 되는 조례를 제정해 이들을 돕고 있으나 부산은 관련 조례조차 없다.
15일 부산시 등에 따르면 현재 부산시가 미등록 이주아동 지원을 위해 진행 중인 사업은 없다. 지원사업의 근거가 되는 조례도 제정된 바 없다. ‘부산시 외국인주민 지원 조례’가 있지만 조례상 미등록 이주아동은 지원 대상이 아니다.
2024년 2월 ‘부산시 외국인주민 지원 조례’가 개정됐는데 ‘출입국관리법 등에 따라 대한민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가지지 않은 외국인은 제외한다’라는 규정이 생겼다. 그간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 등은 이주 아동에게 병원비 긴급 지원이 필요할 경우 미등록이더라도 필요에 따라 지원하고 있었으나 조례 개정 이후 지원 근거가 사라졌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출생 등록이 되지 않은 만큼 정확한 인원수는 알 수 없다. 다만 (사)이주민과함께는 800여 명의 미등록 이주아동이 부산에서 생활하며 건강권 사각에 놓여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시의 미흡한 지원책은 타 지자체와 비교하면 더 확연히 드러난다. 경기 시흥시는 2023년 전국 최초로 ‘출생 미등록 아동 발굴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해 미등록 이주아동에게도 ‘시흥아동 확인증’을 발급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경기도 역시 지난해 10월 출생 미등록 아동 발굴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경남도도 같은 조례를 입법 검토 중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0월 ‘미등록 이주아동 지원을 위한 입법·정책적 대응 방향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제도의 수혜 대상에서 외면받은 미등록 이주아동에게도 필수적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응급 의료와 필수예방접종을 포함한 건강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주민 지원단체들과 부산시의회는 14일 ‘이주아동 건강권 토론회’를 열고 건강권 사각지대 이주아동을 위한 지역사회의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회에서도 이주아동 건강권 보장을 위해 지자체가 제도화와 예산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이주민과함께 정지숙 상임이사는 “지원 제도를 마련 중인 타 지자체와 달리 부산시의 외국인 지원 정책은 퇴보한 셈”이라며 “건강에 치명적인 위험이 있는 긴급 상황인 경우 미등록 아동에게도 지원을 할 수 있게 하는 단서 조항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건강사회복지연대는 15일 성명서를 내고 “건강권은 국적이나 체류 자격에 따라 차별·차등해선 안 될 보편적 기본권”이라며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모든 아동이 필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이주아동 건강권 보장 조례를 즉각적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