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공정(工程)' 대응의 정석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중국 동북부에 있었던 고대 국가들을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수정주의적 역사 왜곡 시도라면, 문화공정은 타국의 전통문화를 자국 문화의 원류나 일부라고 주장하며 이를 왜곡·흡수하려는 것으로 매우 일상적이고 은밀한 전략이다. 중국은 2011년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아리랑을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조선족 문화를 중국 문화의 일부로 공식화했다. 이뿐만 아니라 김치를 중국식 채소 절임을 뜻하는 ‘파오차이’에서 유래한 중국 문화로, 한복을 중국 전통 의복 ‘한푸’의 일종으로 주장해 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리랑과 씨름, 윷놀이, 농악무, 김치 제작, 판소리 등 한국 무형유산 100여 건이 이미 중국의 유산으로 지정돼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처럼 문화공정이라는 행보를 보이는 걸까. 이에 대해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어 속내를 단정하기는 힘들다. 다만 문화공정이라 불릴 일련의 사례들은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중국이 일정 부분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런 이유로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우리의 시각도 있다. 하지만 동북공정이 말해주듯 중화주의의 뿌리는 깊다. 네티즌들의 국수주의 발언까지 일일이 제어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웃어넘길 일이 절대 아니란 얘기다. 실제로 2017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언급한 발언은 이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국가유산청이 최근 추진하는 ‘한중 무형유산 전승 현황 비교 연구’는 다소 늦었지만 분명 의미 있는 대응이다. 과업 내용서에는 ‘중국의 문화 예속화 시도, 이른바 문화공정의 대상이 된 무형유산을 비교·연구해 기초 자료를 구축하겠다’는 목적이 명시돼 있다. 그동안 우리의 대응은 네티즌들의 자발적 반발과 외교적 항의에 기대는 데 그치는 등 전반적으로 소극적이었다. 체계적인 전략도 부족했다. 이제 문화공정은 이런 대응에서 넘어설 때가 됐다. 이는 여론의 분노만으로 맞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연구와 데이터 축적을 바탕으로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의 기준과 논리에 맞춰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번 연구 용역이 갖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문화는 과거의 유산인 동시에 미래 자산이다. 이번 연구가 단발성이 아닌, 우리 문화 주권을 지켜내는 지속 가능한 대응 전략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