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스타트업 키워드는 자족형 생태계 구축과 AI 전환”
올해 부산 ‘부기테크 투자쇼’
‘로컬창업 벤처스튜디오’ 모델 등
수도권 집중 극복 가능성 제시
AI 심사역·의사결정 설계 통한
인공지능 효율성·필요성 강조
M&A·세컨더리 펀드 활성화도
지난달 29~30일 동구 아스티호텔 부산에서 ‘2026년 부기테크 투자쇼 X 스타트업 투자자 서밋’이 열렸다.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 제공
부산 지역 스타트업 업계가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인한 투자 혹한기를 지나 구조적 체질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특히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지역 소멸 위기와 시장 위축에 따른 투자 회수 절벽은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과제가 됐다.
부산시와 부산기술창업투자원(창투원)은 지난달 29~30일 동구 아스티호텔 부산에서 ‘2026년 부기테크 투자쇼 X 스타트업 투자자 서밋’을 개최했다. 서밋에 모인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AI 기술을 통한 투자 효율 극대화, 로컬 중심의 자생적 생태계 구축을 미래 생존을 위한 키워드로 제시했다.
■“수도권 벽 넘자” 로컬의 재발견
스타트업의 수도권의 집중을 막고자 부산시는 지역의 기술창업 지원과 벤처 투자 촉진을 전담하는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을 지난해 출범했다. 부산창투원 송강국 실장은 “2030년까지 누적 2조 원 규모의 지역 자본 중심 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의 성장 구간별 자금 공백을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전역의 공공·민간 창업공간을 연계하고, 아시아 창업 엑스포인 ‘FLY ASIA’를 통해 글로벌 투자자와의 접점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정책적 움직임과 맞물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로컬’이 새로운 기회로 제시되기도 했다. 부산경제진흥원 정덕원 소상공인지원단장은 “성공적인 로컬 브랜드는 개별 기업의 성장을 넘어 지역 상권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이끄는 상징적 자산이 된다”며 기술 혁신 중심의 정책과는 차별화 된 로컬 스타트업 맞춤형 지원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제주더큰내일센터의 경우, 지역 문제를 청년의 시각으로 해결하는 ‘로컬창업 벤처스튜디오’ 모델을 통해 취·창업률 88.9%, 도외 참가자의 제주 정착률 74.4%라는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며 지역 창업 지원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단순히 교육이나 지원금을 주는 단계를 넘어, 실제 사업 운영과 시장 검증을 포함한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종시 또한 ‘세종미래전략산업펀드’를 통해 자족형 경제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 기반이 취약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양자기술 등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민간 자본을 결합한 투자 모델을 운영하며 지역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심사부터 관리까지 ‘AX’ 가속화
투자 효율성 제고를 위한 인공지능(AI) 도입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김정태 대표는 인간 심사역의 편향을 보완하는 AI 심사역 ‘메리’(Merry)의 도입 사례를 공유했다. 실험 결과 인간과 AI의 평가가 일치하지 않는 약 38%의 구간에서 오히려 놓치지 말아야 할 초기·비주류 유망 팀들이 발견되는 등 AI가 발견 최적화의 주요 도구임이 입증됐다.
백오피스(인사, 재무, 기획 등 내부 운영과 관리를 지원하는 부서)의 디지털 전환(DX)을 넘어선 AI 전환(AX)도 가속화되고 있다. 팩트시트 함세희 대표는 “여전히 엑셀과 이메일에 의존하는 투자 관리 방식이 행정 병목을 일으킨다”며 AI가 비정형 문서를 구조화하고 실시간으로 리스크를 모니터링하는 플랫폼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를 통해 행정 업무 시간을 80% 이상 절감하고 심사역이 본연의 가치 창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뉴패러다임인베스트먼트 배상승 대표는 한걸음 더 나아가 AI가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단계를 강조했다. 그는 “향후 경쟁력은 단순히 AI를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수준까지 의사결정을 AI에 위임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스타트업과 투자사 모두 AI를 의사결정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회수 절벽 해법 M&A·세컨더리 펀드
현장의 투자자들이 가장 고심하는 대목은 ‘어떻게 나갈 것인가’(Exit)였다. 최근 IPO 예비심사 기준 강화로 인해 상장을 통한 회수가 어려워지자, M&A(인수합병)와 세컨더리 펀드가 실질적인 대안으로 부상했다. 세컨더리 펀드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자금난을 겪는 벤처캐피털(VC)이나 사모펀드(PEF)가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회사 지분을 인수한 뒤 후 지분 가치가 상승하면 매각해 차익을 얻는 펀드다.
아일럼벤처스 지현철 대표는 “이제 초기 투자기관은 ‘상장시킬 것인가’가 아닌 ‘누가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며, 피투자 기업의 재무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수 가능성을 사전에 준비하는 ‘Pre-M&A 컨설팅’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여전히 IPO 편중 구조가 심각하지만, 최근 대기업과 상장사를 중심으로 인수 검토가 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로 봤다.
특히 지역은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 세컨더리 펀드의 활성화가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라이징에스벤처스 장지영 대표는 “세컨더리 펀드는 만기가 도래한 조합의 구주를 인수해 초기 투자자에게 중간 회수 기회를 제공한다”며 이것이 딥테크나 지역 스타트업의 장기 성장을 뒷받침하는 생태계 보완 장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과학기술지주 김판건 대표 역시 공공기술 기반 딥테크 기업에는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며, 지역 액셀러레이터(AC)의 구주를 인수하는 세컨더리 구조가 생태계의 지속성을 높인다고 덧붙였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