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여성혐오에 무방비로 물든 청년 남성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박정훈
페미니즘은 구시대 유물로 취급되고 있다. 페미니즘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여성의 권익이 신장됐고, 오히려 페미니즘이 젠더 갈등을 야기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 젠더폭력은 여전한데, 페미니즘이 지워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구호거나, 성평등 관점이 부재한 젠더 갈등 해결책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고자 하는 제도적 개선이, 성별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견고한 유리천장을 부수고자 하는 시도가 ‘남성의 몫을 빼앗는 일’로 잘못 인식되는 게 안타깝다. 남성이라서 책임을 떠안거나 참아야 하는 게 많다고 하소연하지만,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성별 고정관념을 유지하는 가부장 체제이다. 군 복무에 대한 고통과 희생은 이 같은 제도와 운영을 잘못한 국가를 향해 비판해야 마땅한데, 언제나 공격 대상은 여성 혹은 페미니스트이다.
그럼 ‘차별을 훔쳐 간 남성’은 행복했을까.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으니, 해결책도 없고 혐오 뒤에는 절망뿐이다. 정치인과 인플루언서들은 청년 남성에게 ‘남성 해방’을 위해 싸우라고 하지만, 실제로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이용하는 셈이다. 지금 청년 남성들이 정의로 믿고 따라가는 길이 여성의 삶을 위협하고 남성의 삶도 망가뜨리고 있다.
이 책은 남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을 망가뜨리는 구조를 겨누고 있다. 안티페미니즘과 여성혐오의 구조는 최근 몇 년 더 단단해졌고, 청년 남성 극우화의 바탕이 되었다. 저자는 이를 끊어내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언론사 젠더 담당 기자로서 유명한 사건부터 인기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을 예로 들며 재미있지만, 메시지가 단단한 글을 만날 수 있다. 박정훈지음/한겨레출판/292쪽/1만 90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