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마음이라는 텍스트, 사랑이라는 읽기
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 당신도 쓱 훑고 가셔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첫 구절이다. 가끔 이 곡을 클래식 기타로 편곡해 연주하곤 하는데, 가사만큼이나 선율의 결이 곱다. 이 노랫말은 사랑을 ‘책 읽기’에 비유한다. 독서가 언어로 형상화된 저자의 마음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라면, 사랑은 상대라는 미지의 세계를 읽고 받아들이는 고유한 여정일 것이다.
이 가사를 문학 이론의 언어로 옮기면, “나는 당신의 텍스트(text)가 되고 싶다”는 고백이 된다. 텍스트의 어원은 라틴어 ‘텍스투스(Textus)’로, ‘짜인 것’ 혹은 ‘직물’을 뜻한다. 씨줄과 날줄로 옷감을 짜듯, 언어의 실을 엮어 촘촘한 의미의 결을 만들어내는 것이 텍스트다. 오늘날 텍스트는 종이 위의 글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림과 영화, 건축물은 물론 사회 현상이나 타인의 마음까지도 읽고자 하는 이에게는 하나의 상징체계가 된다. 내가 진심으로 읽고자 하는 모든 대상은 곧 나의 텍스트가 된다.
읽고자 하는 대상이 '텍스트'
텍스트 읽기, 내면으로 진입
의미 재구성하는 창조적 과정
독서·사랑, 타인 이해하는 노력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작품’과 ‘텍스트’를 구분한다. 서재에 꽂힌 책이 고정된 결과물인 작품이라면, 독자가 읽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열린 공간이 텍스트다. 김춘수 시인이 〈꽃〉에서 노래했듯,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존재를 향한 첫 인식이라면, 텍스트를 읽는 일은 그 존재의 내면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는 사랑법이다. 결국 텍스트란 누군가 읽어주기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는 세계이며, 잔나비의 노랫말은 나라는 세계를 기꺼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수줍은 초대장이다.
연애 기간을 합쳐 나는 아내와 40년을 함께 살아왔다. 그 시간을 지나고 보니, 그것은 한 사람이라는 세계를 쉬지 않고 읽어온 시간이기도 했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으니 그 사람의 속내도 다 읽었다고 믿었지만, 결국 내가 읽은 것은 아내의 진심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었던 문장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을 읽는다는 일은 서둘러 결론에 밑줄을 긋지 않는 인내이며, 상대를 오독(誤讀)하지 않기 위해 텍스트의 행간을 조심스레 따라가는 정성이었다.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기호를 해독하는 일을 넘어, 나름의 형상으로 의미를 재구성하는 창조적 과정이다. 이 여정에서 분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인지심리학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텍스트를 읽는 능력과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은 뇌의 같은 영역에서 작동한다. 결국 문해력을 기르는 과정은 타인의 마음이라는 정교한 직물을 온전하게 읽어내기 위해 ‘공감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며, 문학적 읽기는 타인의 세계에 조심스레 가닿기 위한 가장 좋은 연습이다.
이제 우리는 독서의 외연을 조금 더 넓혀볼 필요가 있다. 사람 또한 하나의 깊은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행간의 숨은 의미를 찾듯, 사람이라는 텍스트 앞에서도 그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다만 사랑에서의 읽기는 언제나 서로를 향해 열려 있다. 나는 상대를 읽는 동시에 상대에게 읽히고, 상대는 나를 읽으며 다시 나에게 다가온다.이렇게 주고받는 읽기 속에서 관계는 깊어지고, 이해는 조금씩 풍성해진다.
독서는 저자와 독자가 나누는 지극히 내밀한 대화이며, 정서가 포개지는 공유의 장이다.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 우리 둘만의 비밀을 새겨요 /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선 / 남몰래 펼쳐보아요” 이 노랫말처럼, 누군가의 삶에 조용히 갈피를 꽂고 잊지 않기 위해 다시 펼쳐보는 정성. 타인이라는 세계를 끝까지 읽어내려는 그 다정한 노력이 있다면, 어찌 독서와 사랑이 다르다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