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피자(Pizza)는 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세계 경제와 국제 정세를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제대로 읽어내려면 방대한 데이터와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단순한 지표가 복잡한 경제의 흐름을 오히려 더 명쾌하게 보여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1986년 고안한 ‘빅맥 지수’다. 각국의 맥도날드 빅맥 가격을 달러로 환산해 비교함으로써 통화가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되었는지 혹은 저평가되었는지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세계 물가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는 ‘스타벅스 지수’라는 게 있다. 스타벅스는 각국의 물가와 소비자 구매력을 반영해 음료 가격을 주기적으로 조정한다. 이벤트성이 다소 강하기는 하지만 국내에서는 제과업체 오리온의 ‘초코파이 지수’도 있다. KFC 지수나 신라면 지수, 스시 지수도 비슷한 경우다.
이런 지표의 장점은 단순함에 있다. 복잡한 계산 없이도 가격만으로 세계 경제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2025년 초 기준 한국의 빅맥 가격은 미국보다 낮았고, 이는 원화가 달러 대비 저평가된 상태로 해석된다. 경제뿐 아니라 국제 정치와 군사 분야에서도 음식은 뜻밖의 지표로 등장한다. 이른바 ‘펜타곤 피자 지수’다. 미국 국방부 펜타곤 건물 주변 피자 가게의 주문량이 급증하면 국제 분쟁이나 군사 작전이 임박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가설이다. 수많은 사람이 근무하는 펜타곤에서는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밤늦게까지 비상 회의가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심야 피자 주문이 늘어난다는 데서 비롯됐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전 펜타곤 인근 피자 주문이 급증해 화제가 됐다. 엑스(옛 트위터) 계정 ‘펜타곤 피자 리포트’를 보면 지난달 28일 새벽 펜타곤 인근 피자 주문이 급증했는데 이 시점이 실제 군사 작전과 겹치면서 다시 화제가 됐다. 비공식 지표지만 군사 움직임과 맞아떨어진 사례가 반복되면서 흥미로운 분석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지표가 언제나 정확한 건 아니다. 미 국방부는 펜타곤 내부에 다양한 식당과 식자재 공급 시설이 있어 외부 피자 주문만으로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빅맥 지수 역시 환율을 결정하는 복잡한 경제 구조를 단순화한 지표라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이런 지표가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음식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른바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중요한 건 숫자 자체보다 그것을 읽어내는 눈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