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여학교가 시작한 부산 첫 만세… 동구에 다시 불러 온 3·1운동
1919년 부산 첫 만세운동 현장 동구
일신여학교 교사·학생이 불씨 지펴
107년 만에 고관로서 3·1운동 재현
11일 부산 동구청 일대에서 3·1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열려 학생과 시민 등 1000여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펼치고 있다. 동구에 있는 부산진일신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1919년 3월11일 오후 9시 만세운동을 펼쳤고, 이는 부산·경남지역 만세운동 효시로 평가받는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대한독립 만세”
11일 오전 부산 동구 고관로. 이 일대에는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얀 저고리와 검은색 치마·바지, 일명 ‘유관순 열사’ 복장을 한 학생과 구민 1300여 명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이들은 머리 위로 태극기를 흔들며 목청이 터져라 독립을 부르짖었다.
도로가에는 같은 복장의 주민들이 양손에 작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 행렬을 맞이했다. 행렬과 인파가 뒤섞이자 고관로에는 거대한 태극기 물결이 펼쳐졌다. 인근을 지나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만세삼창을 따라 하거나 양손을 흔들며 함성에 힘을 보탰다. 1919년 3월을 다시 불러온 듯,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독립을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동구청은 이날 오전 제107주년 동구 3.1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만세운동 뮤지컬 △독립선언문 낭독 △부산진일신여학교~동구청 광장 행진 △독립운동 포토존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마련됐다.
1919년 3월 11일은 부산·경남 최초 3·1운동 시위가 시작된 날이다. 이날 저녁 일신여학교 교사 2명과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며 부산 만세운동에 불을 지폈다. 이후 동래군 동래면 동래시장 시위와 동래군 기장면 시위 등 부산 전역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됐다.
서울 등에서는 3월 1일에 만세 운동이 발생했지만, 부산에서 시위 조짐이 나타난 것은 3월 3일께였다. 이날 부산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려는 움직임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며 3월 초 예정됐던 만세 시위가 잇따라 무산됐다.
이후 일신여학교와 부산상업학교 등 학생들이 중심이 돼 시위를 준비했지만, 경찰이 임시 휴교와 학생 귀가 조치를 단행하며 거사가 지연됐다. 이렇게 시위 계획이 밀리며 부산에서는 3월 11일에서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칠 수 있었다.
부산에서 3·1운동이 동구 일대(당시 부산진·초량 등)에서 시작된 배경도 주목할 만하다. 이 지역은 일찍부터 근대 교육과 외국 문물을 접한 조선인 거주 중심지였다.
일본인이 거주하며 상업 활동을 하던 외국인 거류지와 가까워 국제 정세와 새로운 사상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게다가 선교사가 설립한 근대 학교들이 자리 잡아 학생들의 민족의식도 높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일신여학교 등을 중심으로 반일 분위기와 독립 의식이 확산되며 부산 지역 만세운동이 촉발된 것으로 분석된다.
동구청 관계자는 “3월 11일은 동구를 시작으로 부산 전역으로 3·1운동이 퍼진 의미 있는 날이라 이날에 맞춰 행사를 기획했다”며 “앞으로도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박수빈 기자 bysu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