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원에 '계엄령 놀이' 갑질한 7급 공무원…징역 5년 구형
환경미화원 상대 갑질 의혹을 받는 강원 양양군 소속 7급 운전직 공무원 A 씨가 지난해 12월 5일 춘천지법 속초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의 지휘하에 있던 환경미화원을 상대로 이른바 '계엄령 놀이'를 하는 등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을 일삼은 강원도 양양군 공무원에게 징역형이 구형됐다.
11일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춘천지법 속초지원 형사1단독 주철현 판사 심리로 이날 열린 양양군 소속 7급 운전직 공무원 40대 A 씨의 강요, 상습협박, 상습폭행, 모욕 혐의 사건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5년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보다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들을 장기간에 걸쳐 괴롭힌 사안으로 죄질이 매우 불량한 점, 피해자들이 상당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엄벌을 탄원하는 점, 장기간에 걸친 범행 기간과 방법 등을 고려했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A 씨는 지휘 관계에 있던 20대 환경미화원 3명(공무직 1명, 기간제 2명)을 상대로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60차례 강요, 60차례 폭행, 10차례 협박, 7차례 모욕 등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 씨는 사소한 불만이나 기분 등을 이유로 쓰레기 수거 차량을 일부러 먼 곳에 정차해 피해자들이 걷게 하거나 차량을 따라 뛰게 하고, 고의로 천천히 운행해 업무를 지연시키는 등 위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다. 보유 주식 가격이 하락하자 "주가가 원하는 가격이 될 때까지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제물로 바쳐 밟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또 피해자들을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다른 피해자들에게 발로 밟도록 지시하는 이른바 '멍석말이' 방식의 강요를 했다. 이외에도 "주가 상승을 위해 빨간 속옷을 입어야 한다"며 피해자들에게 빨간색 속옷 착용 여부를 강제로 보여주게 하는 행위를 반복했고, "주식을 사지 않아서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며 피해자들에게 1인당 100주씩 주식을 매수하도록 강요한 혐의도 있다.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이 외에도 담배꽁초 투척, 비비탄 총발사, 불이 붙은 성냥 투척, 물 분사, 발로 차는 행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십 차례 상습 폭행하기도 했다. 차량을 운전하던 중 운전대를 놓는 시늉을 하며 사고를 암시하거나 "말려 죽이겠다"는 등의 발언도 했으며, 다수의 행인이 오가는 장소에서 피해자에게 모욕적인 말도 건넸다. 지난해 11월 25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이 낸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A 씨를 강요 혐의로 입건하고, A 씨의 주거지·근무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논란이 불거진 뒤 양양군이 A 씨를 직위 해제한 가운데,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런 행위가 사실이라면 공직자의 기본자세와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함은 물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범죄행위"라고 지적하며 관계기관에 엄정 조치를 지시했다.
영장실질심사 출석 당시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A 씨는 기소 이후 재판부에 세 차례 반성문을 냈고, 이날 결심 공판을 앞두고도 반성문을 제출했다. A 씨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모두 인정하고 "죗값을 달게 받겠다며 모든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A 씨는 최후 변론을 통해 "저로 인해 큰 상처와 고통을 겪으신 피해자분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공직자로서 부적절하게 행동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점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형 생활을 하면서 저의 잘못과 경솔했던 행동을 돌아보며 후회와 반성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피해자분들에게 큰 상처와 고통을 드린 점 다시 한번 사죄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날 재판에 출석한 피해자들은 엄벌 탄원서를 낭독하며 A 씨에 대한 엄벌을 호소했다.
양양군청. 연합뉴스
피해자 측은 "피고인은 지위를 이용해 지속적인 욕설과 모욕을 했고, 이유 없이 발로 차거나 물을 뿌리는 등 신체적인 폭력을 행사했다"며 "친구인 저희끼리 서로를 밟게 하는 행동을 강요하는 등 인간으로서 큰 수치심과 굴욕을 반복적으로 느끼게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저에게 직장은 생계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언제 또 모욕과 폭력이 이어질지 모르는 공포의 장소였다"며 "인간으로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과 자존감을 심각하게 훼손당했다고 느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공의 신뢰를 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괴롭혔다는 사실이 결코 가볍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며 "직장에서 권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용납되지 않도록 분명한 기준이 세워지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직권 조사를 실시해 양양군의 미흡한 대처를 지적하며 지난해 12월 과태료 800만원을 부과했다. 노동부는 양양군이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체 없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점(근로기준법 위반)과 피해자 포함 다수 직원에게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점(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을 지적했다. 다만 이중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서는 올해 1월 초 양양군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과태료 300만원 부과를 취소했다. 이에 따라 양양군은 노동부로부터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대해서만 과태료 500만원을 최종 부과받았다. A 씨의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5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