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5억 뜯겨도 배상은 막막… 해외 로맨스 스캠 재판의 한계”
부산지법, 로맨스 스캠 일당 재판
'범죄단체 가입·활동' 이례적 적용
하부 조직원 책임 범위 불명확 이유
피해자 배상명령 신청 모두 '각하'
“조직형 사기 배상 책임 폭넓게 인정을”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카톡 프로필에 뜬 매력적인 여성의 사진에 호감을 느끼고 연락하기 시작해 ‘그녀’를 돕기 위해 거액의 돈까지 보냈지만, 결국 남성으로 구성된 ‘로맨스 스캠’ 조직에 당한 것을 뒤늦게 안 A 씨. 사랑을 잃은 A 씨는 돈은 되찾을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부산지법 형사7부(부장판사 임주혁)는 9일 범죄단체가입, 범죄단체활동,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사기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 B 씨와 30대 남성 C 씨에게 각각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이 조직은 2024년 1월 중국인 총책이 캄보디아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이른바 ‘로맨스 스캠’ 범행을 목적으로 결성됐다. B 씨와 C 씨는 2024년 5~6월 각각 조직에 합류한 직후 SNS 등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호감을 쌓고 고수익 투자나 쇼핑몰 운영을 미끼로 돈을 뜯어냈다.
이들은 2024년 6월 25일~9월 2일 한국인 피해자 7명으로부터 89차례에 걸쳐 총 5억 5000만여 원을 가로챘다.
재판부는 이들의 범죄가 일회성 사기가 아니라, 총책과 관리책·유인책 등이 역할을 나눠 움직이는 조직적 범행이라고 판단했다. 로맨스 스캠 범죄로는 이례적으로 조직폭력단 범죄에서 주로 적용되는 ‘범죄단체 가입·활동’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실제로 이 조직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조직원끼리 철저히 가명만 사용했다. 조직원들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12시간씩 의무적으로 전화와 메신저로 범죄를 저질렀다. 지각이나 조퇴 시에는 벌금이 부과됐고, 실적이 저조한 조직원은 오후 11시까지 강제 야근을 했다. 조직원 1인당 매월 2000달러의 기본급이 지급됐고, 실적에 따라 15~20%의 수당을 얹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제기한 배상명령 신청을 각하했다. 하부 조직원인 B 씨와 C 씨의 배상책임 범위가 명백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배상명령은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될 때 법원이 피고인에게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제도다. 해외 조직형 사기 범죄에서는 이 제도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범죄단체의 구조가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구성돼 검거된 하부 조직원이 전체 피해액 중 얼마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특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자들이 기댈 곳은 민사소송뿐이다. 하지만 시간과 비용을 들여 승소하더라도, 하부 조직원들로부터 실제 피해액을 환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법조계에서는 해외 조직형 사기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해 피해 회복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산의 한 변호사는 “국가가 범죄 피해 자산을 선제적으로 동결·환수하거나, 다수 피해자가 발생하는 조직형 사기에 대해서는 배상 책임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법적·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