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티어] 손이 사라지기 전에, 부산이 먼저 시작해야
이진욱 (주)로보터블 CTO(기술이사)
세계 최대 시카고 외식산업 박람회서
양팔 로봇으로 팬 위 양파 볶기 도전
피지컬 AI 외식산업의 새로운 미래
일자리 대체 아닌 빈 일자리 채우기
현장 데이터 학습 분초 다투는 일
부산이 서비스 산업 혁신 주도하길
지난달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외식산업 박람회에서 양팔 로봇이 양파 볶기를 선보이고 있다. 로보터블 제공
지난달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외식산업 박람회에 다녀왔다. 우리가 만든 양팔 로봇이 뒤집개를 집어 들고 팬 위에서 양파를 볶는, 간단한 동작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부스 앞에 모인 사람들은 기대 반 재미 반의 표정으로 ‘이런 날이 정말 오느냐’고 물었다. 대단한 기술로 온 세상의 감탄을 자아내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 작은 동작으로 한 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로봇이 누군가의 주방에 들어가 양파를 볶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요즘은 어디서나 ‘인공지능(AI)이 모든 것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몸을 움직이는 인공지능, 이른바 피지컬 AI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화면 속의 문장이나 그림과 달리, 끓는 기름과 매번 모양이 달라지는 재료를 손으로 직접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환경이 매번 달라지는, AI와 현장을 융합하기 가장 어려운 외식 현장을 파고든다.
외식산업에서 자동화를 말하면 흔히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술’을 떠올린다. 로봇 산업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일자리 대체와 관계가 있으니, 그런 오해도 있음 직하다. 그러나 일반화는 곤란하다. 적어도 외식산업 분야에서 더 먼저 닥친 현실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할 사람이 먼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 앞에 설 사람을 구하기는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화는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 비어 가는 자리를 메워 그 가게가 문을 닫지 않게 하는 생존의 문제에 가깝다.
‘노인과 바다’라는 말이 있듯이 부산은 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늙기’ 시작한 도시이자, 다른 업종보다 유난히 서비스업에 깊이 기댄 도시다. 머지않은 어느 날 ‘사람의 손’이 가장 절실해질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뜻이다. 그런 부산이라면, 이런 변화의 의미를 누구보다 깊이 알아볼 도시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때 부산은 세계의 신발을 만들던 도시였다.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들었고, 그 풍부한 손으로 도시가 일어섰다. 부산은 본래 ‘사람의 손으로 일어선 도시’다.
그 손이 더 싼 곳을 찾아 떠났을 때 부산은 한 번 휘청였고, 대안을 제때 찾지 못한 채 도시 발전이 오래 정체되어 있었다. 도시가 빠르게 늙고 젊은이들이 떠나는 상황에서도 위기는 위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가오는 위기는 손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손 자체가 사라지는 위기다. 그래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사람의 손이 해 오던 일에 다른 능력을 채워 넣는 준비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좋은 로봇이 나오면 그때 사 오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피지컬 AI는 완제품으로 들여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로봇의 몸은 살 수 있어도, ‘어떻게 일하는지’라는 건 어디서 사 올 수 없다. 그 능력은 실제 현장에서 쌓은 데이터가 있어야 하고, 그런 데이터는 인터넷 어디에도 없다. 진짜 주방에서, 진짜 재료로, 시간을 들여야만 진짜가 모인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로봇을 들이는 일이 아니라, 그 로봇이 학습할 데이터를 모으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부산이 가진 현장 중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공정을 골라, 그 데이터를 모으는 시스템을 갖추고 지금부터 수집을 시작해야 한다. 보고서가 아니라 예산이 붙은 사업이어야 하고, 시일이 촉박한 사업이다. 수년에 걸쳐 계획부터 세우고 수행하던 방식으로는 안 된다. AI는 말 그대로 일 초 일 분을 다투는 분야다. 무엇보다 이 일을 끌고 갈 부산시가, 예전과는 다른 민첩함으로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아직 ‘요리하는 로봇을 다 만들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양팔 로봇이 뒤집개 하나를 제대로 집게 하기까지도 설계를 몇 번이나 갈아엎었다.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내가 나고 자란 도시 부산에 한때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듯, 지금 준비를 시작한다면 부산은 줄어드는 손을 메우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도시를 살릴 중요한 일을 대신할 능력을 만들고 다루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드는 도시가 될 수 있다. 시카고에서 양파를 한 번 볶던 그 작은 동작이, 언젠가 사람이 줄어든 부산의 어느 주방을 계속 돌아가게 하는 큰 엔진이 되기를,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이 부산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