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파도 파도 끝없는 텔레만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 위키피디아
“내가 음을 찾은 것이 아니다. 음이 나를 찾아왔다.”
바로크 시대 최고의 다작 작곡가로 불리는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은 작곡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인물이었다. 독학자였고, 사업가였으며, 출판인이었고,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음악을 작곡한 사람이었다. 86세까지 장수하며 말년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약 2000곡의 칸타타와 600개 이상의 기악곡을 작곡했으며, 그 외에도 30여 개의 극음악과 49개의 수난곡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창작했다. 유실된 작품까지 합하면 적어도 6000곡은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코렐리와 륄리는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지만, 텔레만은 찬양을 넘어선 존재다.”
당대 최고의 음악 이론가인 요한 마테존의 이 말은 당시 텔레만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살아 있을 때 바흐보다 유명했고, 비발디, 바흐, 헨델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후대에 이어지지 못했다. 1911년까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텔레만에 관한 독립 항목조차 없었다. 그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1921년 텔레만 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였고, 1981년 텔레만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여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비로소 대중의 품으로 돌아왔다. 바흐가 1829년 ‘마태 수난곡’ 공연과 함께 부활했고, 비발디가 1950년대에 재평가된 것에 비해 텔레만은 더 늦게 재조명받은 인물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전에는 과대평가되었고, 19세기에는 과소평가되었으며, 오늘날에 와서야 진정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텔레만은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대대로 개신교 목사직을 이어온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12세에 오페라를 작곡했을 정도로 천재적인 소년이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독학으로 작곡을 익혔다. 1704년 라이프치히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고, 이후 조라우에 있는 프롬니츠 백작 궁정 악장으로 취임했다. 나중에는 함부르크에서 다섯 개 교회의 음악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았다.
그는 여러 악기 중에서도 플루트를 특별히 사랑했다. 플루트를 위한 환상곡, 플루트와 리코더를 위한 이중 협주곡, 두 대의 플루트를 위한 협주곡 등 다양한 곡을 발표했다. 통주저음의 피치카토 위에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플루트 협주곡 D장조’의 라르고 악장은 언제 들어도 좋다. 이 곡이 마음에 든다면 ‘타펠무지크’, ‘비올라 협주곡 G장조’, ‘플루트를 위한 12개의 환상곡’, ‘파리 4중주곡’ 등으로 텔레만의 음악 세계를 넓혀가 보길 권한다. 좀 더 깊이 파고들다 보면 ‘개구리 협주곡’, ‘걸리버 모음곡’ 같은 재미있는 작품들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텔레만플루트협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