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과 고독,그래도 꿈은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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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추노'에서 개혁적 인물로 그려진 소현 세자(강성민 분). 사진 제공=KBS

KBS의 인기드라마 '추노'가 출발하는 역사적 배경의 맨 앞에 소현 세자(1612~1645)가 있다. 그는 극 초반에 잠시 나와 죽음을 맞고 사라지지만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기대고 있는 커다란 한 축이다.

소현 세자는 병자호란 패전국 조선의 세자로서 적국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9년을 살았던 인물이다. 드라마에서 그는, 장군 송태하가 청나라에서 보필하며 섬겼던 '국본(國本)'이며, 환국 후 새로운 세상의 꿈을 멈추지 않게 하는 근원적인 이유였다. 그는 조선 왕조에서 가장 불행했던 세자다. 한 나라의 차기 통치권자가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길고 깊은 치욕과 고독의 시간과 싸워야 했으므로.

적국 청나라서 9년 볼모 생활
"고통스러워도 죽지 못해"
시대흐름 꿰뚫으며 때 기다려


소설가 김인숙의 첫 역사 장편소설 '소현'은 이 모멸에의 인내와 고독한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의 정교한 시선이 다다른 결론은 이것이다. "소현 세자는 현실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시대의 흐름과 때를 알았던 영웅이다."

소설의 무대와 시간은 소현이 청나라 수도 심양에서 지내다 곡절 끝에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는 직전까지 중국에서의 마지막 2년. 소현은 거기서 자신에게 따라붙는 질긴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모든 것을 다 보았다. 만주 오랑캐 청이 명나라를 멸망시켜 중원을 정복하고 강대국으로 팽창하는 놀라운 모습이었다.

세자와 동갑이면서 적왕인 당시 청의 권력자 도르곤과 주고 받는 말이다.

"세자께서는 모든 것을 다 보시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전쟁의 시대였으나 더 무서운 것은 정치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쟁은 오직 죽음을 위해 있지만 정치는 죽음까지 농락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백성을 어찌 살리겠습니까? 나라를 어찌 번성케 하겠습니까? 굴욕을 참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천하가 바뀌었는데도 명나라를 섬기는 아둔한 나라가 조선이다. 소현은 '친청(親淸)' 인물로 몰려 조선에서 배척당한다. 친명 세력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오른 이가 소현의 부친, 인조였다. 인조는 역모사건에 세자의 이름이 거론되고 청이 명을 치려는 전쟁에 세자가 종군하자 보위를 위협할 존재로 소현을 찍는다.

9년을 견뎌내고 마침내 환국한 소현은 그러나 두 달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향년 33세였다. 학질로 죽었다는 공식 학설 외에 인조에 의한 독살설 등이 분분하나, 알 수는 없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세자의 사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한 것이었을망정 그 오랜 시간을 버텨내고 기다렸다는 것, 그것이다. 드라마 '추노' 18일 방영분에서 송태하가 이런 말을 한다. "전쟁에서 장수는 있는 힘을 다해 싸우고 안되면 죽으면 그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힘이 빠지고 지쳐도 죽을 수가 없다. 해야 할 일 있기 때문이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차라리 더 쉬운 것이구나."

고통스럽다 해서 쉽사리 죽을 수도 없는 몸, 이것이야말로 적의 심장부에서 9년을 버틴 소현의 심정일 것이다.

실존과 허구의 섬세한 직조, 입체적인 인물묘사, 유려한 의고체 문장이 정교하고 치열한데, 특히 소설의 도입부, 청군의 출정 묘사는 압권이다. 김인숙 지음/자음과모음/332쪽/1만2천원.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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