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던 삼겹살, 500g 사서 네 식구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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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파동, 유가 인상 등으로 물가는 연일 치솟고 서민들의 삶은 나날이 힘들어져 가고 있다. 2일 오후 부산 부전시장을 찾은 한 시민이 선뜻 물건을 사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하루하루 밥 먹고 아이들 공부시키는 게 이렇게 전쟁 같아서야 어디 살겠습니까."

2011년 대한민국 서민은 어느때보다 잔인한 봄을 맞고 있다. 설레는 새학기는 가계 적자의 다른 이름이다. 돈 나갈 구멍은 여기저기 늘어나는 데, 밥상 물가에 공공요금, 교육비, 기름값은 무섭게 올라 가계수입은 밑빠진 독이다. 어느 한 줄 마음 놓을 곳 없는 가계부 앞에서 서민은 좌절하고 또 분노하고 있다.

김해 사는 주부 박 모(51) 씨는 밤이면 녹초가 된다. 낮시간 동안 박 씨가 일하는 김밥집이 부쩍 바빠졌다. 외식 물가도 장바구니 물가도 오른 여파다. 중고등학생뿐 아니라 저녁 찬거리 대신 천 원 김밥을 몇 줄씩 사가는 주부 손님이 늘었다. 할아버지까지 3대 가족이 외식하러 오는 경우도 많다. 


몸보다 더 무거운 건 마음이다. 복학하는 아들이 친구와 함께 얻은 수원 원룸이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대학 졸업반 딸까지 두 자녀의 등록금이 760만 원으로, 새학기 지출이 훌쩍 1천만 원이다. 그나마 아들이 제대 뒤 알바로 한 학기분을 벌었지만 이사하면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박 씨가 열심히 도와도 가계 벌이는 오히려 줄었다. 화물차 운전을 하는 남편에게 기름값 인상은 곧 매출 감소를 뜻하기 때문이다. 기름값이 매달 200만 원은 나가는데, 다음 학기는 고사하고 당장 다달이 부칠 월세와 생활비도 걱정이다.

식구끼리 삼겹살 하나 제대로 구워먹지 못하는 밥상 물가는 요령부득이다. 보통 네 식구가 삼겹살 1㎏를 사야 먹었는데, 이제는 돼지고기값이 하도 올라 만 원어치나 500g씩밖에 못 산다. "살림 꾸려가기가 요즘만큼 힘든 적이 없었어요. 하루하루 버티기가 버겁습니다."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의 주부 정 모(46) 씨의 봄은 폭탄 전기료 고지서로 시작됐다. 지난 겨울 기준 드럼(200ℓ)당 24만 원, 두 드럼으로 한 달 반 쓰는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어 방마다 전기요를 깔았는데, 월 9만 원을 안 넘기던 전기료가 1월에는 22만5천 원, 2월에 17만8천 원이 나왔다. 기름값 아끼려다 전기료 누진세 폭탄을 맞은 건 정 씨만이 아니다. "아직 기름 보일러를 쓰는 주택들이 많아요. 월급이나 오를 것이지, 기름값만 자꾸 오르네요"

둘째 아들을 대학에 보내는 마음도 편치가 않다. 등록금은 460만 원에서 딱 천 원이 빠졌다. 그래도 아들만 둘이라 교대로 군대에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형편을 맞추려니 대형마트도, 1+1 묶음 상품도 끊은 지 오래. 집앞에 야채 트럭이 오면 필요한 만큼 조금씩 산다. 지난 설에는 이웃끼리 곶감이며 사과를 나누는 방법으로 4인 가족 차례상을 8만9천 원으로 해결했다.

요즘 제일 걱정은 교복을 벗는 아들의 사복값이다. 고교 졸업식부터 교복 대신 양복을 입는대서 양복 한 벌 값이 나갔다. "먹는 건 밖으로 표가 안 나지만 입성은 아이들끼리 경쟁이 되잖아요. 있는 집 아이들은 메이커를 사입힐 텐데, 어느 부모가 내 아이 부실하게 입혀 내놓고 싶겠어요."

아이들이 어려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 사는 김 모(34) 씨는 네 살배기 아이의 한달 보육료와 반년 치 수업료로만 이달에 122만 원을 지출했다. 홈스쿨 교육비도 이달부터 7만5천 원에서 8만5천 원으로 올랐다. "100g에 1천900원 하던 돼지고기는 3천 원을 바라보고, 애호박은 하나 1천 원에서 2천400원으로 올랐더라고요." 얼마 전부터는 마트 대신 집 앞 전통시장에 가서 같은 가격이라도 덤을 좀 얹어온다.

정부는 '서민, 서민' 하는데 서민인 내가 받은 지원 대책은 하나도 없거든요. 우리집의 이 긴 겨울은 도대체 언제쯤 물러갈까요?"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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