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아 Chris World] 규슈에서 맛보다 4 - 라멘과 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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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멘

 최근 서울에 잇푸도 1호점이 문을 열었다는 중앙지의 기사를 봤습니다. 잇푸도(一風堂)는 하카타(후쿠오카의 옛 지명)를 대표하는 돈코쓰 라멘(라면) 전문점입니다. 일본의 3대 라멘으로 큐슈 하카타의 돈코쓰 라멘, 삿포로의 미소 라멘, 도쿄의 쇼유 라멘을 손꼽는데 돈코쓰 라멘은 돼지뼈를 고아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이죠. 처음에는 맛이 진하니 좀 무겁다고 느낄 수 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감칠맛이 돕니다. 돼지국밥을 먹는 부산 사람들의 입맛에는 꽤 잘 맞습니다. 최근 시내 곳곳에 들어선 일본 라멘 전문점에서 맛볼 수 있죠.



 제가 잇푸도 라면을 처음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포럼 참석을 위해 후쿠오카에 갔을 때 입니다. 초콜릿이나 사탕은 먹어도 밥으로 먹는 음식이 단 것은 싫어하는 관계로 첫 일본 출장이 꽤나 힘들었습니다. 호텔 뷔페에서 밥을 먹을 때를 빼고는 도대체 '달아서' 느끼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모든 음식에 설탕을 쏟아부은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그저 "달인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죠. 식사 때마다 깨작거리다 결국 같이 온 인도네시아 기자와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뭔가 시원한 국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우리는 호텔 안내 데스크에 근처의 라멘집을 알려달라고 했고, 그렇게 추천받은 곳이 바로 잇푸도입니다.
 잇푸도 문을 열고 들어서 테이블 위에 놓인 반찬(!)을 보는 순간 기쁨의 미소가 번졌습니다. 세상에 고춧가루로 버무린 숙주나물 무침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요새야 한류 덕분에 고춧가루를 제공하는 식당이 늘었지만 당시에만 해도 일본 식당에서 고춧가루를 본다는 것은 보물찾기와 같은 일이었던 거죠.(제가 머물렀던 짧은 기간 동안의 일이지만 말입니다)
 여하튼 그날 저는 돈코쓰 라멘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먹었고, 빨갛게 무친 숙주나물과 함께 먹는 그 맛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일본어를 전혀 몰랐기에 가게 이름 같은 건 그냥 까먹어버렸습니다. 이후 여러차례 후쿠오카를 방문해서 늘 그 라멘집은 어디였을까 궁금해했습니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이치란 등의 라멘 전문점이 있지만 혀에 깊이 각인된 맛에는 못미쳤거든요.
 지난 5월 일본 출장길에 드디어 12년 만에 잇푸도와 재회를 한 겁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늦게 일행들과 찾아간 라멘집. 테이블 위에 놓인 숙주무침을 보는 순간 "여기였구나"를 외쳤습니다. 이제는 꽤 많은 스타일의 돈코쓰 라멘을 먹어본 관계로 기억 속의 맛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구수한 국물이 좋았습니다. 언젠가 꼭 찾고 말리라 다짐했던 숙제를 푼 기분도 좋았고요.



 설이 좀 길었죠. 다시 잇푸도로 돌아와서.. 
서울에 문을 연 잇푸도 관련 중앙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1985년 가와하라 시게미 씨가 라멘계에 새 바람을 위해 열었다고 합니다. 진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로 인기를 끌었고, 뉴욕과 싱가포르에도 진출했다고 하네요. 후쿠오카 중심가에는 다이묘에 있는 총본점(다이묘 혼텐)과 텐진에 위치한 잇푸도 타오 후쿠오카 점, 본점 인근에 있는 니시도리 점(니시도리텐) 3곳이 있습니다. 
 메뉴는 돼지뼈 국물만을 이용한 '시로마루 모토아지'와 매운맛이 더해진 '아카마루 신아지'  '카라카멘' 세가지가 있습니다. 시로마루 모토아지는 흰색의 국물이 구수하고, 아카마루 신아지에는 고추-마늘-일본 된장 소스가 더해집니다. 카라카멘은 보통맛, 매운맛, 아주 매운맛 중 선택을 하면 됩니다. 



 보통 사이즈를 기준으로 시로마루는 700엔, 아카마루와 카라카엔은 각각 800엔 입니다. 여기에 달걀을 넣고, 돼지고기를 저민 챠슈 등을 추가하면 가격이 조금씩 올라갑니다.  일본 라멘집 메뉴에는 꼭 야키교자(군만두)가 있습니다. 철판에 나란히 세워 구운 교자는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해서 맥주와 함께 먹으면 딱입니다. 우선 맥주와 야키교자를 시켜 먹고, 뜨끈한 라멘을 먹으면 배가 든든해집니다.
 제가 갔던 때 잇퓨도 가게 벽에 특별메뉴를 소개하는 안내문이 붙어있었습니다. 동북지방 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격려하자는 뜻에서 '하카다발 니혼겐키즈케멘'이라는 메뉴를 만들었더군요. 우리말로 하자면 '부산發 국민기운회복면' 쯤 되는 거겠죠.
4월 20일부터 5월 19일까지 한정판매한 이 메뉴의 가격은 800엔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후쿠오카 시민들이 '간바로(힘내라) 일본'을 생각하며 이 메뉴를 선택했을까요?


# 돈멘

 공식 일정을 마치고 일본 친구를 만났습니다. 뭘 먹으면 좋을까? 먹는 것 좋아하는 친구를 두면 좋은 점 하나. 항상 새로운 메뉴를 제안한다는 것입니다. "돈멘 어때" 친구의 말에 전 그게 뭐냐고 물었죠. "저번에 다른 한국 친구가 와서 먹었는데 아주 좋아했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그럼 가봅시다~



 텐진 중심가의 한 빌딩 지하에 위치한 가게 이름은 미네마츠혼케입니다. 가게 앞에 장식된 돈멘 모형을 보니 뭔가 푸짐하게 올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왜 돈멘이 인기인가'에 대한 설명이 있군요. 안내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1일 권장 채소 섭취량은 350g이다. 그런데 돈멘 1그릇에는 약 400g의 채소가 들어있기 때문에 돈멘 하나면 목표를 클리어(clear) 할 수 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돈멘 위에는 오뎅(어묵)을 비롯해서 양배추, 당근, 버섯, 숙주 등 고명이 푸짐하게 올라가 있습니다. 보통의 일본 우동이 국물에 면, 약간의 파로 장식된 것과 비교하면 채소를 훨씬 많이 먹을 수 있는 거죠. 게다가 국물도 시원합니다. 
 돈멘 한 그릇에 890엔. 좀 더 작은 사이즈에 오니기리와 어묵을 곁들인 세트 메뉴도 같은 가격입니다. 돈멘 면이 작은 대신 밥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겠죠. 저는 이 세트메뉴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곁들여 나오는 어묵에서 뭔가가 오도독 거립니다. 닭고기 연골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야채가 들어간 돈멘 국물(이 메뉴의 경우는 소스라고 할 정도로 걸죽해보입니다)에 면을 따로 내오는 돈멘즈케 890엔, 카레가 들어간 카레돈멘은 1050엔입니다. 가게에서 먹지 않고 포장을 해갈 수도 있더군요. 면과 야채와 어묵, 육수를 따로따로 포장해서 1인분에 890엔. 전국에 택배도 가능하답니다. 

 돈멘에서 주목할 점은 풍부한 채소입니다. 일본 친구가 한국에 있을 동안 정말 음식을 많이 먹었는데 오히려 살이 빠졌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친구는 '틀림없이 채소를 많이 먹어서 그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전에도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인이 정말 채소를 많이 먹는다"고 했을 때 '일본도 비슷하지 않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친구가 그렇다고 해도 채소 섭취량이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이번에 일본에 가서 보니 양국의 채소 섭취량 차이가 꽤 컸습니다. 일본의 음식이 우리보다 훨씬 더 탄수화물 중심이었습니다. 우동, 돈까스, 덮밥(돈부리) 등 대부분의 일본 직장인들이 먹는 음식은 밥이나 면 위에 고기나 소스 등이 뿌려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거기에 올린 채소하고 해봤자 파, 양파 조금 정도. 여기에 미소시루가 나오고 반찬으로는 무나 채소 절임(단무지)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일본 가정식에서는 꼭 샐러드 반찬을 식탁에 올리지만 외식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에 역시 채소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인의 기본 상차림은 밥, 국, 메인요리와 반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찬에는 기본적으로 김치가 있고, 계란이나 어묵 볶음 등 외에도 나물 등이 나옵니다. 고기라도 있으면 쌈야채는 꼭 따라 나옵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식단 구성이 다르니 채소 섭취량에 절대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새 한국인의 식탁에서도 채소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주변의 식당들을 가만히 따져보면 문제가 좀 심각합니다. 
 밥, 국, 반찬을 제공하는 정식집보다는 밥이나 면, 고기 중심의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이 늘고 있습니다. 남포동에서 외국인 친구와 밥이라도 먹으려면 제대로 된 밥집 찾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이 분식점, 스파게티집, 중국집, 아니면 일본 분식집입니다. 거기에 피자집까지 더해집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채소는 우웩"하며 고기만 쏙쏙 골라먹습니다. 고기와 밥으로 한끼가 구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곧 채소 섭취가 부족한 국가가 될 수 있겠죠.




 위 사진은 최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요리책입니다. '체지방계 타니타의 사원식당 - 500kcal에 배부른 정식'이라는 이 책은 2권까지 나왔는데 12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체지방까지 측정하는 체중계를 만드는 타니타사의 사원식당의 영양사가 쓴 책입니다. 체중계를 파는 회사의 직원들이 비만에 시달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사원식당의 식단을 싹 바꾼 겁니다. 
 밥, 국, 메인요리, 제1샐러드, 제2샐러드로 구성된 간략한 식단이지만 지속적으로 사원식당을 이용한 직원들이 "꼬박꼬박 밥을 먹도고 살이 쏙 빠졌다"고 즐거워하고 있답니다. 21kg을 감량했다는 직원도 있군요. 이 식단의 기본 원칙은 '저칼로리, 저염분'입니다. 한끼 열량은 500kcal 전후로 하는 대신 씹히는 요리를 만들어 포만감을 준다는군요. 또 모든 요리에 채소를 넣어 나트륨의 배출을 돕는답니다(채소 속의 칼륨이 나트륨 배출을 돕습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인의 1일 식이섬유 권장량은 성인을 기준으로 남자가 25g, 여자가 20g 입니다. 식이섬유 권장량이니 채소를 훨씬 더 많은 양을 푸짐하게 먹어야 하겠죠. 
 많은 일본인들이 말합니다. 특히 피부미용에 관심 많은 여성들의 경우 다들 하나같이 "한국 여자들 피부 좋다"고 말합니다. 일본 친구는 그 답을 '채소'에서 찾습니다. 그 친구가 말하더군요. "우리 상사의 경우만 봐도 하루종일 파 조금 빼고는 채소를 안먹어. 진짜 심각한 문제야." 그 친구 상사의 아침은 빵과 커피, 점심은 우동, 저녁은 돈까스 돈부리(덮밥)이랍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은 채소를 얼마나 드셨습니까? 또 내 아이는 오늘 얼마만큼의 채소를 먹었을까요?


* 잇푸도(라멘)     다이묘 본점 - 후쿠오카시 중앙구 다이묘 1-13-14 (전화 092-771-0880) 
                              니시도리점  -  후쿠오카시 중앙구 다이묘 1-12-61 (전화 091-781-0303)
                              잇푸도 타오 후쿠오카점  - 후쿠오카시 중앙구 텐진 1-13-13 (전화 092-738-7061)

* 미네마츠혼케(돈멘)   본점 - 후쿠오카시 하카다구 立花寺 1-9-34 (전화 092-503-3687)
                                         하카다데이토스점 - 후쿠오카시 하카다구 하카다역(하카다에키) 중앙가 1-1  (전화 092-292-7181)
                                         텐진후쿠비루점 - 후쿠오마시 중앙구 텐진 1-11-17  텐진후쿠빌딩 지하1층 (전화 092-714-0030)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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