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찬(롯데 자이언츠)이 지난 1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자신의 야구인생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하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날쌘돌이' '주사인 볼트' '주처님' '초구찬' '까도남.'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1번타자 김주찬의 별명이다. 그의 다양한 특징을 잘 나타내 주는 말들이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걱정부터 앞섰다. 여러 별명 중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때문이었다. 평소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수가 적은 그이기에 대답이나 제대로 해 줄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1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김주찬을 만났다. 그는 청바지에 흰색 셔츠 차림의 깔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1981년생. 우리 나이로 32세다. 잘생긴 얼굴에 프로야구 13년차의 연륜이 묻어 나왔다. 보기에도 무뚝뚝해 보였다.
어릴 때부터 날쌘돌이 야구하려 서울 충암초등 전학 삼성서 2-1 트레이드 아픔 겪어 롯데 이적 '인생 터닝포인트' 중심선수 되려 굵은 땀방울
그라운드 휘저어야 직성 풀려… 올해도 무한질주할 겁니다
김주찬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했다. "초등학교 때 공부는 하지 않고 뛰어놀기만 좋아한 말썽꾸러기였어요." 그의 답변이다. 공놀이를 하다 동네 유리창을 깨는 일은 다반사였다. 좀 과장해서 그의 부모는 유리창값 물어주느라 허리가 휠 정도였다. 지금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학원에 보내줘도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뛰쳐 나왔고, 언제나 공놀이에 전념했다. "야구라고 할 것도 없어요. 아이들끼리 방망이 들고 공놀이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야구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당시 인기 있던 어린이신문에서 초등학교 야구부 부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본 것이다. 짜릿한 느낌이 온몸에 퍼졌다. 제대로 된 야구를 하고 싶었다. 부모님을 졸랐다. 하지만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는 집안의 장남인 데다 공부도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우등생이었다.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던 것이다.
끝까지 고집을 피운 김주찬은 부모와 타협해 초등야구단 대신 리틀야구단에 가입하기로 했다. 부모는 "몇 달 하다가 말겠지" 하는 생각에 야구를 허락했다고 한다. 부모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김주찬은 리틀야구단에서 야구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었다. 그는 부모님을 다시 졸랐다. 정식 야구부가 있는 서울 충암초등학교로 전학시켜달라고 한 것이다. 부모는 기가 찼다. '야구를 하기 위해 다니던 학교까지 바꿔 달라니….'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결국 김주찬의 고집에 부모는 학교를 옮겨줬다.
충암초등에서 야구를 하게 된 김주찬은 날개를 단 맹수가 됐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타격감에다 빠른 발까지 갖춘 '호타준족'이었다. 김주찬이 들어오자 충암초등 야구부는 빛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빨랐어요.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빠르다고 소문이 나 있었죠." 충암중·고 때 전국대회에 참가하기만 하면 도루왕을 차지할 정도였다.
김주찬은 고교를 졸업하고 프로행을 택했다. 2000년 삼성 라이온즈가 2차 1라운드 5순위로 그를 지명했다. 삼성은 김주찬의 장래성을 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트레이드라는 시련을 겪는다. 롯데 마해영이 삼성으로 가는 대신 팀 선배인 이계성과 자신은 롯데로 옮기는 2-1 트레이드였다. "트레이드 통보를 받았을 때 '말로만 듣던 트레이드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정말 멍~하니 아무런 느낌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팀 선배와 함께 트레이드돼 충격은 덜했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김주찬의 배번은 12번이다. 삼성에서 롯데로 트레이드된 이후 줄곧 사용하고 있다. 남다른 사연이 있다. 롯데로 트레이드될 때 평소 잘 따르던 당시 삼성의 박충식 코치에게 새 배번을 어떤 것으로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박 코치는 12번을 권유했다. "1등 아니면 2등을 하라"는 의미였다. 김주찬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롯데로 이적한 이상 최선을 다해 주전을 꿰차고 중심선수로 발돋움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혼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얼굴이 잠시 붉어졌다. 결혼을 빨리 하고 싶은데 여자친구가 지금은 없단다. 부모도 빨리 결혼하라고 성화라고 한다. "까칠한 제 성격을 잘 맞춰주는 여자면 좋겠죠. 예쁘면 좋겠지만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그가 쑥스러운 듯 웃는 표정이 꽤나 정겹다.
다시 별명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는 많은 별명 가운데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주사인 볼트'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빠른 발을 가진 자신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다는 게 이유다.
'초구찬'이란 별명은 어떠냐고 물었다. 초구찬은 1번타자인 그가 상대 투수의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공격한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다. 이 별명에 대해서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면 공격적이었습니다. 야구는 확률경기인 만큼 초구를 치면 안타를 칠 확률이 높아요. 두산 베어스 이종욱이나 SK 와이번스 정근우는 저보다 초구를 더 많이 쳐요. 앞으로도 초구를 적극적으로 노릴 겁니다."
김주찬은 자유계약선수(FA)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아직 시즌 중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FA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내년 FA가 될 것에 대비해 올 시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할 것이라는 말만 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롯데가 부진했던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던 시절에 TV 등에서 다른 선수들의 경기모습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는 롯데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최근 몇 년이 야구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이 쉬고 있을 때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그는 잘 알고 있다.
김주찬의 소망은 소박했다. 팬들이 김주찬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아! 그 김주찬' 하고 생각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2루를 훔치는 빠른 발을 가진 선수, 초구를 좋아한 선수로 그냥 그렇게 팬들이 떠올리는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팬들의 기억 속에 조그마한 한 부분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김주찬은 오늘도 초구를 휘두르고 치타처럼 그라운드를 달린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