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삐끼' 와 '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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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박혀 있는 일본말이 무서운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그 뿌리는 언제든 조건만 맞으면 일본말 찌꺼기의 싹을 틔워 올리는 것이다.

'박씨는 "대규모 국제행사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박람회장 앞에서 성매매를 유인하는 '삐끼(호객행위자)'를 만나 당황했다"며 "행여나 외국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만 해도 낯이 화끈거렸다"고 말했다.'

<여수엑스포장에 성매매 삐끼 기승 '나라 망신'>이라는 기사의 한 구절인데, 여기 나온 '삐끼'도 일본말 찌꺼기다. 유흥가에서 주로 쓰는 이 속어는 '당김, 끎'이라는 뜻의 일본말 '引き, ひき(히키)'에서 왔다. 그러니 삐끼가 기승이라서 나라 망신이라는 이 신문, 굳이 '삐끼'라는 말을 기사에 쓴 것도 사실은 망신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이 말을 '호객행위자'로 풀이한 것도 껄끄럽다. 그냥 '호객꾼'이면 충분했을 터.

한데, '호객'은 '물건 따위를 팔기 위하여 손님을 부름'이란 뜻으로 사전에 올랐지만, '호객꾼'은 아직 오르지 못했다. 쓰면서도 약간 찜찜한 것이다. 하지만 길은 있다.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불렀는지를 보면 되는 것. 사전풀이를 보자.

'여리꾼 : 상점 앞에 서서 손님을 끌어들여 물건을 사게 하고 주인에게 삯을 받는 사람.'

이거, 호객꾼 대신 쓰기에 딱 맞는 말이 아닌가. 실제로 국립국어원도 '삐끼'는 '(손님)끌기, 여리꾼'으로 순화해 쓰라고 권한다.

"나는 원래 '정치 무끼'(정치에 적합한 성향)가 아니다. 성격도 조용한 스타일이다."

어느 신문에 실린 미국 캘리포니아 주 강석희(59) 어바인 시장 인터뷰 기사의 한 구절인데, 여기 나온 '무끼'에 깜짝 놀랐다. 35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의 말 속에까지 일본말 찌꺼기가 남아 있어서…. 흔히 '요리사 무끼'나 '군인 무끼'라고도 쓰는 이 '무끼'는 일본말 'むき(무키)'에서 온 것이다. '방향, 방면' 또는 '적합성'이란 뜻으로 어떤 직종에 체질적으로 맞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쓴다. 한마디로 '요리사 체질, 군인 체질'이라는 뜻.

그러고 보면 설사 '삐끼, 무끼'라고 말했더라도 기사에서는 바꿔 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는 게 언론의 또 다른 존재이유이기도 할 터. 이진원 기자 jinw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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