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소통 그리고 처절한 사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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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스투데이 황성운 기자] 데뷔 20년. 송강호가 영화를 시작한 지 올해 20년이다. 다양한 장르를 경험했지만, 유독 사극하곤 거리가 멀었다. 이번 '사도'가 두 번째다. 퓨전 사극에 가까운 '관상'과 달리 이번에는 묵직한 느낌의 정통 사극에 가깝다. 더욱이 이번엔 임금인 데다가 폭넓은 나잇대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많았다.  

영조.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여러 번 그려졌고, 당연히 여러 배우가 영조를 연기했다. 그래도 '사도'는 궁금했다. 송강호가 연기한 영조가 어떤 모습일지, 어떻게 다를지 말이다. 제아무리 송강호라고 해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새로운 영조를 만들어낸다는 게 녹록지 않았을 테니까. 결론, 의심할 여지 없이 송강호는 영조였다.  

Q. '관상'에 이어 두 번째 사극이다.
송강호 : '관상'은 계유정난이란 사건이 실제로 있었지만, 관상쟁이가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는 퓨전 사극이다. '사도'는 임오화변이란 비극을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처음으로 볼 수 있다. 현대물만 들어오다가 '관상'을 하게 돼 기분 좋게 했다. 사극은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 닿았다. 그리고 약간 편견이 있었다. 똑같은 의상에 수염 붙이고, 말투도 똑같고.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창의력 등을 발휘되는 게 제한돼 있을 거란 편견이 있었는데, 해보니까 무궁무진한 창의력이 나올 수 있고, 사극만이 가진 즐거움이 있다.

Q. 첫 사극 '관상'은 어려웠고, 잘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사극 '사도'를 임하는 자세는 무엇이었나. 
송강호 : '관상'은 첫 사극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사도'는 첫 왕 연기라는 게 특별했다. 또 우리가 모르는 군주가 아니라 너무 잘 알고 있고, 많이 다뤄진 인물이다 보니 부담감이 있었다. 새로운 해석이라기보다 인물이 가지고 있는 사실적인 느낌 그리고 내면의 이야기를 좀 더 진솔하고, 정직하게 표현하는 게 새롭게 느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연기했다. 

Q. 역사 속 실재 인물을 연기하는 자세도 다를 것 같다. 
송강호 : '사도'나 '밀양', '박쥐'는 현장성보다는 텍스트의 견고함을 그대로 표현해야 하는 작품이고, '살인의 추억' '놈놈놈'은 현장의 생동감이 표현될수록 좋은 것 같다. 이번 작품은 가장 시나리오에 몰입하고, 텍스트를 제대로 전달하는 게 중요한 작품이다. 어떠한 대사나 연기도 임의대로 한 건 없다. 애드리브도 전혀 없다.



Q. 기존 영조는 무수히 많았다. 혹시 기억에 남는 게 있나. 
송강호 : 이순재, 박근형, 최불암 한석규 등 기억나는 영조가 4명인데, 제대로 본 게 없다. 회피하려는 게 아니라 한석규가 출연한 '비밀의 문'은 영화 촬영할 때였고, 대 선배들 작품은 오래전이라. 사실 TV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Q. 목소리 톤부터 영조를 위해 새롭게 만든 것 같다. 
송강호 : 영조의 주 나잇대가 만 69세다. 요즘과 달리 250년 전 70세는 지금으로 치면 100세 정도이지 않을까. 물론 물리적인 나이도 나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도로 장수하셨고, 재위 기간도 가장 길다. 긴 세월 속에 군주와 아비로서 살아왔던, 보이지 않은 외로움과 고통, 고뇌 등을 가진 아주 노회한 군주의 모습이어야 했다. 외형은 분장의 도움을 받지만, 본질적인 느낌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걸 표현하는 게 목소리다. 그래서 좀 혹사를 했다. 탁하고, 갈라진 느낌이 그나마 노회한 정치인이자 아비이자 군주로서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절절하고 적절한 것 같았다. 

Q.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딱' 나오는 건가.  
송강호 : 그건 영업비밀이다. 하하. 40~50대의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70대가 가장 많다. 어린 사도를 바라보고, 젊게 나올 땐 목소리도 깔끔하게 나름대로 변화를 줬다.

Q. 나잇대도 다양하다. 그 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송강호 : 약간 스탠바이가 돼 있어야 했다. 인물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나 진중함이 머릿속에만 있지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나올 수가 없다. 남몰래 연습한 것도 이런 이유다. 

Q. 체력과 정신력, 어떤 면이 더 힘들었나. 
송강호 : 당연히 정신력이다. 체력은 힘들게 없다. 왕이니까 앉아 있고, 가마 타고 이러니까. 또 이준익 감독이 오래 찍고, 불필요한 장면을 찍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압박감을 받는 거다. 그래서 연습한 거다. 항상 베스트가 나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연습하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걸러내는 거다. 

Q. 영조에 대한 역사적 고증은 어디까지인가. 
송강호 : 약간의 변형은 있지만, 상상력으로 꾸미고 만들어진 내용은 없다. 예를 들어 극 중 숙종릉을 찾아갈 때 아들을 돌려보낸 건 사실이다. 그리고 비 오는 데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데, 그 내용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유로 돌려보낸 건 아니다. 영조가 사도에게 그런 트집을 잡는 건 다른 상황인 거다. 이 같은 변형은 있었다. 

Q. 송강호가 해석한 영조는 어떤 인물인가. 
송강호 : 영조는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평생의 외로움과 고통을 평생 안고 사신 분이 아니셨나. 그렇다고 내면의 외로움 같은 것들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면 표현이 아니죠. 스펀지에 물이 배어 나오듯 조금씩 나와 줘야 맞을 것 같았다.

Q.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아들을 대하는 영조의 태도가 전부 이해됐나. 
송강호 : 방대한 내면과 과정을 담기엔 부족하다. 그래서 심리적인 저항감이 없잖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인데 너무하지 않나 싶고. 하지만 대리청정은 몇 년에 걸친 일인데 영화에서 함축적으로 보여주다 보니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생각해보면 30~40년 전만 해도 부모 세대가 자식에게 바라는 게 상상 이상이었다. 근데 250년 전이고, 왕족인데,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Q. 결국 영조와 사도가 대립하다 죽음을 앞두고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별할 때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될 수밖에 없는 그 장면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송강호 : 각박한 세상 살다 보면 소통을 생각하고 있지만, 잘 안 된다. 결국, 이별할 때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아픈 사랑을 표현하는 건 지금이나 예나 똑같을 것 같다. '사도'에서는 조금 다르다. 스스로가 만들었으니까. 원인은 사도의 비행이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배경은 영조다. 그 시퀀스가 하이라이트다. 절절했던 것 같다. 

Q. 실제 송강호의 아버지는 어땠나. 또 송강호는 어떤 아버지인가. 
송강호 : 우리 아버님도 배우보다는 그 시대 아버님과 바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독특한 게 아니라 다 그랬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사도가) 개를 그리면 안 될 것 같다. 하하. 그리고 될 것 같다. 하하. 그리고 아버지로서 나는 영조 같진 않다. 글쎄. 옛날 우리 아버지 세대하곤 다르겠지만, 경상도 남자니까 무뚝뚝하고 속정으로 이야기하는 편이다. 



Q. 유아인은 물론 박소담, 서예지 등 어린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그들에 대한 느낌이 궁금하다. 
송강호 : 유아인도 그렇지만, '총명'이라는 단어가 딱 떠오른다. 자기들이 맡은 연기를 총명하게 한다는 생각이다. 유아인은 나이에 비해 굉장한 내공을 느낄 수 있다. 충분히 테크닉 적으로 연기할 수 있음에도 그걸 경계하면서 연기한다. 어떤 장면이든 정말 자기의 진심에 정직함을 믿고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테크닉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데, 그런 것을 스스로 배척해야 한다고 하나. 

Q. '사도'가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송강호 : 자식과 아비의 소통뿐만 아니라 사회의 소통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분도 있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분도 계신다. 다 맞는 말 같다. 소통,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처절한 사랑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동서고금을 떠나 모든 인류의 화두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Q. 천만 흥행 등 그간 숱한 흥행을 경험했는데, 이제는 흥행에 초연해졌나. 
송강호 : 초연하지 않다. 하하. 물론 꼭 수치가 성공과 실패를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진심으로 연기하고, 진심이 잘 전달되길 바랄 뿐이다.

Q. '사도'가 내년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부문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송강호 : 외국 분들이 실제 이 비극을 낯설게만 보진 않을 것 같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도 그렇고, 이런 비극적인 건 문학적으로 많이 접해왔다. 물론 아카데미는 그와는 별개인 것 같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한다. 운도 따라줘야 하고. 아카데미는 한국을 대표해서 나간다는 것에 영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결과는 겸허하게 생각한다. 

Q. 10월 1일 개막하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사회를 맡기도 했다. 
송강호 : 20주년이기도 하고, 나도 영화 데뷔 20주년이다. 그런 의미도 작게나마 있지만, 큰 의미는 부산영화제가 올해 보이지 않게 내홍도 겪고, 힘들게 새 출발 하는데 작은 힘이나마 더하고 싶다. 사회를 잘 보는 사람도 아니고, 말주변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그 부탁을 거절 못 하겠더라. 6회 때 보고 14년 만이다. 아프간 출신 여배우와 함께하는 데 화려한 스타보다는 그런 느낌도 좋았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사진=비에스투데이 강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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