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인륜과 천륜

지난 14일 발생한 영국 런던 임대아파트 화재사건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건으로 감싼 4살 딸을 안고 5층 창밖에서 아이 엄마가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다. 펫이라는 40대 남성이 나타나 아이를 던지라고 고함쳤으나 아이 엄마는 아이가 다칠까 봐 차마 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사이 불길이 5층으로 올라왔다. "못해요"라며 울던 아이 엄마가 결국 아이를 던졌고 펫은 아이를 받았다. 아이 엄마는 현재까지 밝혀진 사망·실종자 79명 중 한 명일 것으로 추정된다. 부모와 자식 간은 인륜이 아닌 천륜이라더니, 그렇지 않다면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인륜(人倫)이란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인륜 중에서도 피붙이 사이일 경우를 천륜(天倫)이라 한다. 상하관계나 질서를 따지는 이성은 인륜에 가깝고, 저절로 그렇게 되어지는 본능은 천륜에서 나오는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결혼은 인륜지대사이고 부자지간 효(孝)와 사랑은 천륜지대사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살다 보면 무릎 칠 날이 올 것이다.
천륜은 자연계를 지배하는 원칙이자 에너지라는 생각이 든다. 십여 년 전이다. 처마 밑에서 어른 주먹만 한 쌍살벌집을 발견했다. 뜨거운 여름 쌍살벌은 벌집 구멍마다 알을 낳고 날개에 물을 묻혀 헌신적으로 키우고 있었다. 헌 모기장으로 온몸을 두르고 쌍살벌집에 접근한 뒤 에프킬라를 한참 동안 쏘았다. 그런데 벌집에서는 한 마리도 밖으로 나오거나 도망을 가는 녀석이 없었다. 덜컥 겁이 나 사다리를 밟고 있던 다리가 후들거렸다. 사다리를 내려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데 그제서야 한 마리씩 수직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쌍살벌들은 알과 새끼를 보호하려고 벌집 구멍마다 몸으로 틀어막고 저항했던 것이다. 놀랍게도 피신한 벌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쌍살벌로부터 천륜을 깨쳤다면 과장이 지나친가.
2014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이 낳은 친딸 2명을 냉장고 냉동실에 유기한 부산의 한 미혼모가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동기에 대해 "사귀던 동거남을 많이 사랑해 동거남이 알게 되면 헤어지자 할까 봐 두려워 유기했다"고 밝혔다. 엽기적인 사건이다. 이런 유형의 범죄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인륜과 천륜이 무너지면 패륜(悖倫)밖에 길이 없다.
이상민 논설위원 yeyun@